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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yugioh

요쥬 44

2018. 5. 6. 02:10

*공미포 약 2000자

*유희왕 GX 요한쥬다요한 / 전생 소재 有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장미의 이름 4편

      1편 http://wkfqnxkrgo.tistory.com/67

      2편 http://wkfqnxkrgo.tistory.com/69

      3편 http://wkfqnxkrgo.tistory.com/70



쥬다이는 종종 전생과 현재를 헷갈렸다. 유벨과 하나가 되면서 밀려들어온 기억은 유벨만의 기억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같이 올랐던 언덕, 같이 보았던 풍경들……. 그것들은 이번 생의 기억들과 이리저리 뒤섞였다. 성벽에 서서 보았던 노을이 기억났다. 자신은 멋대로 성을 나가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던 날이었다. 아름답기도 했고 갑갑하기도 했던 노을은 어느새, 어린 시절 유벨을 쏘아 올렸던 로켓의 풍경이 되었다. 멋대로 놀러 나간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는 유벨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은, 자신과 듀얼을 하다가 쓰러진 형의 문병을 갔다 오고 흘린 것이 되었다.

기억은 종종 헷갈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들,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매 순간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날마다 기시감이 찾아왔다. 자주 가던 카페의 사장이 사실 왕궁의 감옥지기였다는 것을 기억해내기까지는 꼭 한 달이 걸렸다. 어째서 그렇게 붉은색이 좋냐는 질문에 어린 시절 좋아했던 히어로가 아니라, 자신이 한아름 받았던 꽃을 떠올리기까지는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요한이 준 첫 번째 선물도 그 붉은 꽃이었다. 아마 요한은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번에 요한이 준 첫 선물은 꽃이 아니라 붉은 목도리였지만. 그러니 기억을 할 수도 없겠지만.

요한을 생각하면 무언가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요한의 푸른 머리카락이 멀리서 보일 때가 그랬고, 요한이 저를 보고 웃을 때도 그랬다. 목에 걸려서 눈이 메이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밟혀서 목이 메이는 기분이었다.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뛰어가는 요한이 보였고, 제 위에서 웃으면서 입을 맞추는 요한이 보였다. 그런 요한이 사랑스러워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 손에 닿는 볼은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그때 받았던 꽃의 잎처럼. 눈을 감으면 다시 뛰어가는 요한이 보였다.

최후의 기억은 그렇게 강렬했다.

 

장미의 앙금 04

 

쥬다이가 요한을 찾아온 건 오 년 전의 일이었다. 쥬다이의 여행은 일 년이 가지 않았다. 혼자 생활하려니 적적한 것도 있었으나, 자신을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지낼 때는 전생의 기억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쥬다이 자신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듀얼은 즐겁고, 친구들과도 종종 연락을 한다.

하지만 혼자가 되면 넘실거리는 전생의 기억은, 현대의 기억을 가진 쥬다이가 이겨내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쥬다이는 전생의 기억을 한 번에 얻어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게 기억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서서히 지워지는 게 수순이다. 쥬다이는 성인이 되어서 그 기억을 몽땅 새로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기억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전혀 달라서, 쥬다이가 실제로 겪은 것처럼 생생했다.

어떤 하인이 혼나기 시작하고, 비명이 들리더니 다음날에는 보이지 않았던 충격도 지금 받은 것처럼 생생했다. 자신이 성벽을 넘어가선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날도. 유벨이 수술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었던 맥 빠지던 웃음도. 뒤늦게 그것이 어떤 수술인지 알고 달려간 방에서 들었던 비명소리도. 수술대 밑에 흐르던 핏물도. 누군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며 내질렀던 저주도. 자신의 손바닥을 벌겋게 물들인 피도.

자신이 내리꽂았던 칼에 맺힌 피와 그걸 뽑던 감각도, 그때의 상처에서 느껴지던 화끈거리던 아픔도. 모두 격렬할 정도로 생생했다. 쥬다이는 혼자 있다간 정말로 전생과 현생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돌바닥에 스며들던 피를 떠올리다가 아이스크림을 물고 가는 아이를 보면 스스로가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듀얼 아카데미에서 자신은 레드 기숙사의 쥬다이였으나, 국경 사이의 소도시에서 자신은 그저 자신이었다. 외부의 규정 없이 쥬다이 홀로 그토록 강렬한 날것의 기억들을 현재의 것과 구별할 재간이 없었다. 누군가가 필요했다. 자신을 듀얼 아카데미에 다녔던 쥬다이로 기억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미 쥬다이에게 로켓을 쏘아 올린 날의 풍경은 노을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문을 두드렸다. 그 친구가 오래 연락을 안 한 애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애인이니만큼 곁에 달싹 붙어있으면 조금은 다시 현실감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을 연 요한을 보고 그 생각은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춥지 않냐며 호들갑을 떠는 요한의 품에 안겨서 쥬다이는 고개를 숙였다.

요한의 푸른 머리카락을 보자 너무 많은 기억이 생각났다. 화살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 붉은 꽃이 손목을 간질이는 촉각. 처음 만난 날의 노을.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 자신을 보고 짓는 웃음이 생각났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단어는 모자를 지도 모른다. 항상 언어능력이 좋지 않았던 자신이니, 어쩌면 틀린 표현일지도 모른다. 문장으로 이루어진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만들어진 기억이었다. 이미 지나간 순간들을 모조리 다시 겪는 기분이었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붉은 목도리를 둘러주는 요한을 끌어안으며 쥬다이는 인정했다. 자신은 요한을 아주 많이 그리워했다고. 볼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요한의 어깨에 고개를 비비며 쥬다이는 인정했다. 저는 요한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서 다시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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