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쥬다이/유벨/요한 전생 이야기 + 현생 이야기
*유희왕 GX 요쥬요/ 유벨쥬다유벨
*첫 편이라서 조금 횡설수설할 것 같은데 사실 첫 편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랜만에 써서...ㅋㅋㅋㅋㅋㅋㅋㅋ
유벨은 붉은 꽃을 기억했다. 그 꽃은 이름이 없었는데, 향이 매우 짙었다. 아마 이 시대쯤 되어서는 어떻게든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지루한 학명이든, 어떤 잡설이 얽힌 이름이든 간에. 이름이 붙긴 했을 것이다. 창 너머는 화창했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꽃향기에, 붉은 꽃이 기억났다. 이름이 없는 주제에 그 꽃을 소재로 한 노래는 있었다. 이 꽃은 피처럼 붉었고, 사랑처럼 짙어. 나는 이 마음을 접을 수가 없네. 처량한 곡조에 붙은 가사였다. 집 안에서 풍기는 원두향이 꽃 향기를 다시 창 밖으로 밀어냈다.
요한이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지는 네 달이 채 안 되었다. 시 복지관에서 한 달짜리 핸드 드립 강의가 있었다. 쥬다이는 같은 시간대의 수영 강의를 신청했다. 수영이 끝나고 쥬다이가 씻고 나올 때까지 요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둘 다 주말에는 테니스를 치곤 했다. 강의가 완전히 끝난 날, 요한은 직접 커피를 내려주겠다며 유벨과 쥬다이를 탁자 앞에 앉혔다. 거대한 날개는 접고 있었다. 쥬다이는 기대된다며 요한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봤고, 요한은 웃으면서 커피를 차분히 내렸다. 커피는 먹을 만 했으나 조금 밍밍했다. 저번엔 성공했는데……. 요한이 머쓱해하면서 웃었다. 쥬다이는 요한이 구워놓은 마들렌과 같이 먹으면서 웃었다. 요한도 잘 못하는 게 있네. 유벨은 커피를 홀짝였다.
다정한 한 때였다. 너무 다정한 한나절이어서, 유벨은 요한의 초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요한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하나는 이번에 쥬다이가 듀얼 대회 본선 진출로 받아온 것이고, (물론 대상을 탔다.) 다른 하나는 요한이 산 책의 사은품이었다. 요한은 쥬다이가 타온 잔을 건넸다. 유벨은 순간 그것을 창문 밖으로 던지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쨌든 쥬다이가 가져온 잔이었다.
“내가 전생에서 쥬다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 했던가?”
“……원래 나는 전생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네.”
창 밖을 응시하는 요한을 노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나한테 말 한 적 없어.”
“……석궁에 맞았어. 열네 발. 불행의 숫자에 꼭 하나를 더해서.”
요한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커피에서 솟아나던 김이 조금 줄어들었다. 요한의 커피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쥬다이는 수영장에 갔다. 물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시원하고 기분 좋다면서 웃었다.
“나는 쏜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어. 그 배후도. 배후의 배후까지도. 일가 친척은 물론이고 일하던 하인과 그 가족까지 모조리 죽였지.”
요한은 묵묵히 커피를 들이켰다. 처음 쥬다이에게 타준 커피보다는 훨씬 나아진 맛이었다. 그는 쥬다이가 어서 수영을 끝내고 돌아왔으면 했다. 이번 커피는 더 맛있게 내려줄 수 있을 거야. 쥬다이한테 내려줄 생각하면서 비싼 원두까지 사왔다고. 오늘 미엘루에서 사온 케이크랑 같이 주자. 집 앞에 그렇게 맛있는 제과점이 들어오다니 행운이야…….
“쥬다이는 네가 행복하게 살길 바랐지.”
요한은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요한은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유벨과 꼭 반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요한은 커피잔을 쳐다봤고, 유벨은 창밖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요한은 전생을 몰랐다. 전생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녀가 말하는 전생의 요한과 지금의 요한이 같은 사람인지, 그녀조차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를 죽이지 못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벨은 순식간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텅 빈 아파트에 요한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둘 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이번에 그녀는 그를 죽일 것이다. 화창한 햇빛이 창 밖에서부터 들어왔다. 강한 오후의 햇살이 요한의 왼뺨에 내렸다. 오른쪽에는 긴 그림자가 양탄자에 깔렸다. 유벨은 요한을 죽일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어린 반역자를, 멍청해서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로 그의 왕을 죽여버린 어린 반역자를, 다른 모든 반역자들처럼 목을 졸라 죽이고 그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왕을 잃어버렸다.
장 미 의 앙 금 上
유벨은 언덕 저 아래에서 자신의 왕이 붉은 꽃을 한아름 따오는 것을 보았다. 즉위식이 곧 있을 거라며 온 왕국이 수군대는 가운데, 그 주인공은 어디서 굴러온 꼬마와 놀았다며 자신 앞에 흙투성이 꽃을 한아름 떨구었다. 붉은 꽃은 향이 강했다. 그녀는 향에 질식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 꼬마는 어디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왕자의 친우이자 호위기사이자, 더할 나위 없는 충군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몰라. 가버렸어.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는데! 되게 어렸어. 6살? 그 정도로 보이던데.”
그러니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이렇게 안전불감증이어서야, 그녀가 매번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군은 약하지 않았고, 그는 매번 유벨이 자신을 너무 아낀다며 유난을 떨었다. 유벨은 과보호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매번 웃고 넘어갔다. 사실 이번에도 별 일 아닐 게 뻔했다. 이미 이 근처 일대는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그 꼬마는 언덕 아래에서 모여 노는 아낙네 중 한 명의 자식일 게 뻔했다. 아니면 정말 길거리를 전전하는 신세던지. 어느 쪽이든 왕자와 연이 없을 건 뻔했다.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음부터는 저를 부르세요. 꽃 정도는 같이 따드릴 수 있는 사람이 깔리고 깔렸는데, 굳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애랑…….”
“하지만 아이였다고! 꼬맹이랑 강아지는 착해.”
왕자는 푹 주저앉더니 꽃더미 속에서 가장 깨끗한 꽃을 찾아냈다. 꽃잎 하나하나가 탐스러웠고, 크기도 컸다. 왕자는 꽃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꽃을 집어 유벨에게 내밀었다.
“자! 이건 유벨 거야. 유벨한테 주고 싶어서 따왔어.”
유벨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웃었다. 웬만한 사람들의 손가락보다 긴 손톱에 그의 주군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꽃을 받았고, 손바닥 아래로 그의 머리에 붙은 흙모래를 쳐주었다.
“감사합니다. 쥬다이 왕자님.”
쥬다이는 웃었다. 발 밑에는 따온 붉은 꽃들이 한 가득이었다. 언덕 위로 바람이 불었다. 꽃잎은 날아가면서 꽃대와 떨어졌다. 언덕 아래로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꽃잎들을 잠깐 바라보았다. 짙은 향이 났다. 유벨은 코를 막아도 이 향기가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꽃은 피보다 붉고, 사랑보다 짙어서, 잊어버릴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