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총 페이지: 52p(예상, 간지 제외) / 소설 페이지 49p / A5 / 흑백 / 삽화 없음 / 전체연령
요쥬교류회 참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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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p 정도의 길이입니다.
0. 보이지 않는.
요한은 오늘도 기분이 좋았다. 부엌에 놓아둔 바질은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고 심심해서 길러본 토마토는 열매가 슬슬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무르익은 봄볕은 흘러 넘쳐서 여름의 태양빛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게 좋았다. 요한은 그 좋은 여름의 햇빛까지도 싱그럽게 표정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조금 더운 여름의 오전에서도 좋은 점을 몇 개고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요한만큼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큼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욕실 문이 열리자 듣기 좋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코에서 가볍게 스쳐 나오는 허밍도 개인의 말투만큼 개성적이었다. 시원하고 달달한 소리들이 공기 중에서 찰랑찰랑 흔들렸다. 요한은 소리가 나는 쪽을 흘끗 돌아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요한이 막 싱그러운 토마토를 씻어서 자르기 시작할 때,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던 쥬다이는 그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식탁에서 칼질을 하기에는 식탁의 높이가 부족해 허리가 아플 텐데도 요한은 꼭 토요일 저녁에는 식사준비를 식탁에서 했다. 허리 아프게 왜 여기서 하냐고 쥬다이가 물어보면 꼭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너랑 마주보면서 준비하는 편이 즐거운걸? 아, 이따가 토마토 삶으면 껍질 까는 것 좀 도와주라.”
꼭 그런 대답을 들으면 쥬다이는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요한은 햇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꼭 그런 소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 씻은 쥬다이한테는 여러 차원을 돌면서 묻은 매캐한 연기냄새도 나지 않았고, 우주에서 공허하게 울었던 별빛의 눈물도 없었고, 빛도 한 점 들지 않는 다락방에 묻어있던 퀴퀴한 냄새도 없었다. 얄팍하게 올라오는 샴푸냄새와 바디 워시의 향이 코끝을 잠시 맴돌면, 곧 토마토에서 싱그러운 향이 물씬 올라왔다. 그리고는 쥬다이가 웃는 것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싱그럽게 웃는 쥬다이는 요한이 평생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오늘 메뉴는 뭔데? 궁금해!”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면 그 큰 갈색의 눈동자에 요한이 오롯이 담겼다. 몇 번을 봐도 따뜻한 색이었다. 밤중에 보아도 늘 온화했다. 함께 맞이하는 아침이나, 같이 눕는 저녁에 보아도 한결같은 온기가 그 안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알처럼 맑은 눈동자를 통해서 넘친 온기가 흘러나오곤 했다.
“글쎄, 뭐일 것 같아?”
토마토를 몇 개만 자르고 나머지는 물기만 빼두고는 요한은 다시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는 꺼내는 락앤락통을 보고 쥬다이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겨울을 보내고 겨우 해를 본 해바라기도 저렇게 기뻐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뭔지는 몰라도 닭요리구나!”
쥬다이의 웃음은 입술로만 짓는 가벼운 호선이라던가 아니면, 어쨌든 분위기 있게 웃는 그런 종류의 웃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얼굴 전체가 풀어지는 웃음이었다. 헤실거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눈도 입도, 눈썹마저도 풀어져서는 기분 좋다는 티가 표정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었다. 매번 친구들 사이에서는 바보 같은 웃음이라고 놀림을 받고는 했지만, 요한은 그런 웃음도 쥬다이가 웃으면 왜인지 거기에 색이 입혀져서 따뜻한 느낌만 날 뿐이라고 생각했다. 요한이 아무리 고민해봐도 쥬다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웃음은 이렇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웃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그 웃음이 좋아서 자꾸만 보고 싶었다.
“난 돼지보다는 소가 좋은데, 소보다는 닭이나 오리가 좋더라.”
입맛이 싼가 봐! 우스갯소리에 소리 내어 웃는 쥬다이의 볼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노랗게 물들었던 웃음이 금방 붉은 색으로 바뀌어갔다. 이번에는 요한이 큰 소리로 웃었다.
부엌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온 거실에 찰랑거리는, 즐거운 날이었다.
이어지는 식사시간도 즐겁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번 여름 휴가는 어떻게 할까, 쥬다이? 토마토 스튜를 한 입 먹으면서 말했다. 상큼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스튜는 누가 끓였는지 몰라도 참 맛있었다.
“음, 우리 여행이나 길게 갈까?”
쥬다이는 큰 토마토 건더기를 담아서 스튜를 한 입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지 얼굴 표정이 좋아 보여서 요한은 제가 먹었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
“좋은 생각인데!”
“그럼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가볼까?”
그러면 시간 오래 걸리지 않아? 이번에는 구운 닭고기를 한 입 먹고는 와인을 쭉 들이키면서 쥬다이가 물어왔다. 그렇게 먹으면 빠르게 취할 거라는 생각도 들어 말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 요한은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자신은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대로 구는 쥬다이가 좋았을뿐더러, 쥬다이는 주량도 상당한 편이었으니 괜한 걱정이었다.
“그래도, 우리 마지막으로 휴가 길게 쓸 수 있는 거잖아. 둘 다 일 시작하면 아무리 잘 맞춰도 이렇게 마음 놓고 시간을 편하게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같이 지내는 집에서 만큼은 쥬다이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편하게 있어주기를 바랐다. 어떤 식으로의 제약도 받지 않고 편히 뜻대로 하기를.
“흠, 좋아! 나도 스카이 다이빙 해보고 싶었어!”
닭고기를 찍었던 포크를 물고는 말하는 쥬다이의 등 뒤로 하얀 커튼이 조금씩 날렸다. 부엌에 작게 열어놓은 창문 탓이었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햇빛처럼 내려오는 기분일 거 아냐!”
커튼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역시, 요한은 오늘이 즐거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1. 가장 짧은 파랑 中 발췌: 과거 공개되었던 글이라 미리 공개해놓음)
※해당 부분 말고는 전부 새로 쓴 내용입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른 이들의 옅은 부러움으로 포장된 짙은 원망을 보기 전까지는, 딱 그 전까지만 그렇게 생각했었다. 웃음이 들리는 순간에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마냥 즐거울 줄 알았다.
“너는 힘을 가졌지만”
현재는 그저 반짝거리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다. 현재가 즐거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자괴감이나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쥬다이는 그런 것에 둔한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알 리가 없었다. 표현하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뭘 해줬어야 한다는 말이야.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훨씬 오래 산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로서도 충격이었다. 단순히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자기보다 훨씬 어린애에게 제정신으로는 차마 질투를 쏟아낼 수 없었겠지. 그래서 입을 다물고 표현하지 않았겠지. 이해는 갔다.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들이 그런 이성을 놓아버릴 정도로 원망 받았던 걸까?
“그 힘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았잖니.”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칼 사이로 입술이 친절한 원망을 쏟아놓았다. 사람은 괴로움이 있어야, 두려움이 있어야, 지고 있는 슬픔이 있어야 강해진단다. 그건 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거든.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수업을 하던 선생이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최후의 수업일지도 몰랐다.
괴로움이 있든 없든 이 상황에 질 수는 없었다. 쥬다이는 카드를 뽑았다. “드로!” 여전히 힘차게 외쳤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기에 전과 다름없이 힘차게 뽑았다. 뽑힌 카드는 꼭 필요한 카드였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선생이 웃었다.
“역시 쥬다이군은 강하네.”
그 힘이 나한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네가 갖고 있니?
그건 소리로 바뀌어 고막을 실제로 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성격임에도 쥬다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틀렸다.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그가 그의 손으로 절망을 선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두고, 자신이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고는 감히 생각 할 수 없었다. 차마 당신의 말을, 기분을, 처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모래바람이 날린다고 생각했다. 텁텁한 기분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빛은 파장이 짧을수록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강하답니다.’
정말 기억에 콱 박힌 한 마디였다. 생각해보면 보충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었던 것도 같았다. 귓가에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래바람은 이세계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딘지 모르는 세계는 밤이 되면 놀랍게 차가워졌고 낮에 불던 바람은 더 강해졌다. 모래 속으로 처박힌 학교를 빠져 나와서 끝도 없는 사막을 쳐다보았다. 맨 처음에는 차가운 공기 덕분에 시야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했으나 곧 제 입에서 나온 김이 세상을 흐리게 만들었다. 해가 제대로 뜨지 않는 기묘한 세계였지만 지금이 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몇 시간 전보다 더 어두워진 주변은 흉흉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온 밖은 별은 무슨, 어둡고 쓸쓸하기만 했다. 덕분에 기분이 묘해져 가만히 바닥에 앉아 있으니 슬슬 기어 나오는 냉기와 추위가 제 체온을 끌어내렸다.
최근엔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듀얼을 하고 쓰러졌던 학생들과 죽어간 선생들과……. 쥬다이는 그 일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는 질타를 받았다. 선생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정곡을 찔렀다. 자신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에 취해만 있을 뿐이라고. 거기에 그 어떤 절박함도 없다고. 확실히 쥬다이는 아무 생각도 없긴 했다. 굳이 장밋빛 미래를 꿈꿀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는 충분히 즐거운 현재를 가지고 있었다. 탁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온 걱정을 쏟느니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는 게 나았다. 누군가는 미래가 알 수 없어서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가 즐거우면 알지도 못하는 미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걸 생각할 필요는 있나? 시간이 아깝지 않나? 눈 앞의 현실은 확실하게 즐거울 수 있는데.
그래서 그는 웃음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고, 웃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언제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충실히 임했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자신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렸다. 당연히 앞으로도 열심히 힘을 모아 헤쳐나간다면 모두 함께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했다. 너는 힘이 있으니,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너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너는 힘을 휘두르는 아이일 뿐이라고!
하지만 내가 왜 절박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의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물음이었다. 내가 왜 어른이 되어야 하지? 반쯤 감긴 눈이 되물었다.
이세계의 하늘에는 별도 뜨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성운을 닮은 보랏빛의 투명한 먼지구름뿐이었다. 반쯤 감긴 눈은 분명 그 전에 누군가가 온화하고 따뜻한 색을 가진 눈동자라고 말해준 그 눈이었는데 지금은 검은 구멍 같은 하늘만 담고 있었다. 먼지구름이 움직인다고 느꼈다. 먼지들이 떼로 바람에 몸을 실었다. 여전히 반쯤 감긴 눈으로 중얼거렸다. 패하고 나서도 포기할 수 없는 동기. 그것이 어른의 조건이고 강점이라면.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아. 그러면 그걸로 된 거 아냐?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지지 않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이긴다. 그런 내가 당신들에게 왜 책망을 받아야 하지?
그래 봤자 당신들은 패배하고, 죽었을 뿐이잖아.
전부 다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들이었다. 일부는 모독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그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힘을 가진 자는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말은 일견 정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을 것이다. 하긴! 당연하지! 히어로들은 다들 그렇잖아. 불의를 용서하지 않고 정의를 행하는 히어로들!
쥬다이는 텅 빈 하늘도, 사막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사막의 모래 곳곳에 여러 물체들이 박혀있었다. 대부분 석상과 건물들이었다. 모래를 가득 이고 부는 바람들이 그 위에 모래를 차곡차곡 쌓았다. 어쩌다가 잘못 불어진 바람들은 오히려 모래의 층을 한 꺼풀 벗겨냈다. 그러나 그래 보았자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피폐해진 돌의 표면뿐이어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마다 불행함이 있었다. 원래 매끄러운 파란 석상이었을 여신상의 기단은 모래람으로 인한 침식 탓에 표면이 거칠기만 했고 모래 한 알 한 알이 남기고 간 보기 싫은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사막에 박힌 주제에 한껏 녹이 슨 청동문은 한때 사람들이 뻔질나게 찾았던 궁의 대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 틈에 모래를 잔뜩 이고 굳게 닫혀있었다. 상흔의 장식들뿐이었다. 곧 다시 모래가 바람을 타고 그것들을 덮었다. 모래가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쓸어내리는 손길과 비슷했다.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곧 손길은 우악스럽게 잡아 벌리는 손아귀로 변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안다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달라고. 열지 않으면 뚫고 들어갈 것이라면서.
쥬다이는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반쯤 감겼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아무도 하지 않을 물음을 던졌다. 최선을 다해 스러졌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거기는 어때? 괜찮아? 슬프진 않아?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령을 볼 수 있는 나도 당신들은 볼 수 없나 보지. 다행이네.
아, 당신들이 여기 없는 것뿐인가? 하긴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당신들이 나에게 올 일은 없겠지. 그것도 진짜 다행이네. 하긴, 어느 누가 죽어서까지 부러움으로 포장된 질타를 날리려고 하겠어. 이제는 힘을 가져도 당신들한테는 아무 소용도 없을 텐데. 아무 의미도 없겠지, 이제. 그러니 나에게 올 일은 없을 거야.
손으로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얇은 손톱이 관자놀이를 긁었다. 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도 당신들이 그렇게 부르던 힘은 없을 것이다. 그 속에 있는 뼈와 근육도 그 사이를 흐르고 있을 혈액들에도 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책임을 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은 내 어디에 있는 걸까. 어차피 자신에게 귀속된 성질이기에 위치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물었다. 모든 말에 가치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모든 생각이 유의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저 문을 갉아먹는 모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우울해서야. 그 우울함을 풀어내려면 청승 좀 떨어줘야 하지 않겠어? 당신들 말이야. 거기서 슬프더라도, 울지는 마. 진짜로 울지 말란 말은 아니고. 그냥 위로야. 들을 필요도 없고 아무 힘도 없지만 들으면 좀 위로가 되는 말이잖아. 울지 마. 오른 손이 눈을 강하게 눌렀다. 코가 저릴 정도로 얼굴을 눌러댔다. 자연스레 손에 들어간 힘을 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방법을 몰랐다. 당신들의 염원을 내가 가볍게 눌러버린 걸까. 그래서 당신들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닐까? 그 모든 건 사실, 도와달라는 부탁이 아니었을까.
파고 들어가면 한없이 들어갈 수 있는 주제였다. 산 자가 죽은 자에게 과거에 대해 묻는 것은 끝없이 들어갈 수 있는 굴과 비슷했다. 손을 내리고 눈을 떴다. 탁한 자신의 회색 바지가 보였다. 생의 연관이라고는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몇 개의 기억들이 강하게 떠올랐다. 타인의 죽음이라는 건 이런 건가 봐? 쥬다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깜박이는 눈이 아팠다. 짧은 속눈썹이 바람에 흩날렸고 먼지와 부딪혔다. 그러나 세상의 모습은 분명하게 상이 맺혔다. 꾹 다문 입술에서 입김은 나지 않았다.
내가 당신들에게 물어봤으니, 이제 당신들도 나에게 물어줘야지. 분명 죽은 이들은 자신의 곁에 없을 것이다. 누가 죽어서까지 부탁을 하고 싶겠어. 그들은 아마 자신이 힘을 얻길 바라던 이유인,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의 곁에 있어줄 것이다.
‘무슨 소리야 쥬다이, 너는 다른 이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있잖아!’
그 말은 거의 축복에 가까운 말이었다. 쥬다이는 눈을 깜빡였다. 낭떠러지처럼 가파르게 검은 하늘이라면 땅을 보면 그만이었다. 단단히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을 보면 되는 일이었다. 저 멀리서 요한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요한의 말들은 하나같이 기적과 같아서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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