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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yugioh

요쥬 20 (sensuous 1.5)

2017. 6. 26. 23:54

*bgm은 어떻게 까는 걸까요?





요즘 가이드와의 관계는 만족하시고 계십니까?”

검사를 받으러 오면 늘 하던 질문이었다. 쥬다이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잠시 공백을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건 아무리 겪어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물론 사생활 존중 같은 걸 바랄 입장이 아니긴 했지만. 센티넬은 가이드를 연결해주는 국가기관이 아니면 죽어날 판이었고, 그런 센티넬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쥬다이보다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었다. 뭐, 쥬다이에게 한정지을 것도 없이 센티넬이라면 모두 자신들의 처지를 절감하고 있었다.

. 물론이죠.”

요한 성격 좋더라고요. 너스레를 떨면서 덧붙였다.

그들이 어떤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지는 조금이라도 정부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다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 당사자이고, 남들보다 훨씬 민감하다고 하는 센티넬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로 인해서 더 스트레스 받는 동족도 있었고 오히려 그 가시 돋친 존중에 만족하는 동족도 있었다. 하지만 쥬다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떻게 소비되든 어떻게 대우받든. 남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약간의 짜증은 났지만 다 상관없었다.

보통 센티넬의 발현은 십대 후반이었다. 쥬다이의 발현은 8세였다.

 

Sensuous 1.5 (심미적으로)

 

처음 기억은 아주 멀리 있던 신호등의 불빛을 본 것이었다. 차례로, 일정한 규칙을 갖고 변하는 신호등의 관찰은 신기했다. 보호자의 손을 꼭 잡고 신호등은 순서대로 변한다며 너무 신기하다고 말한들 어른들은 그냥 이 근처 신호등 몇 개를 보고 한 말이겠거니 했을 뿐이다. 그가 우연히 겹친 건물의 틈과 틈 사이의 시야로, 몇 블록을 넘은 거리의 풍경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미노처럼 변하는 신호등들이 신기해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 어른들은 뭐가 그리 좋냐면서 따라 웃었다. 결국 첫 발작이 있을 때까지 아무도 그가 센티넬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첫 발작은 8세의 생일이었다. 바쁜 부모님은 선물과 케이크와 함께 그를 아주머니에게 떠넘겼다. 곧 부모님께서 오실 거니까 초부터 불자는 아주머니의 말에 쥬다이는 눈을 꼭 감고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지 집중했다. 그러니까, 어머니나 아버지의 자동차 소리나 그들의 구두소리 같은 것들이 들리는지 집중했다. 쥬다이는 언젠가부터 그런 소리를 당연하게 들어왔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날은 그런 소리가 들릴 일이 없었다. 그들이 헐레벌떡 찾아온 건 쥬다이가 쓰러지고 나서도 몇 시간이 지나서였으니까.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어린 그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발자국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주머니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빵칼을 식탁 위로 던진 것은 분명 나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얇은 플라스틱 칼이 대리석으로 된 식탁 위에 떨어졌을 때, 쥬다이는 천둥이 친 줄 알았다. 쨍그랑! 그 소리는 유리보다도 더 크고 단단한 것이 깨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얇은 플라스틱 칼이 반동으로 인해 몇 번 더 식탁의 표면과 부딪힐 때, 쥬다이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귀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분명 목구멍에서 터진 자신의 비명은 거슬리지 않는데, 그게 벽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은 또 머리를 울렸다. 아주머니도 갑작스런 아이의 이상에 비명을 질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건 센티넬 각성에 있어서 가장 안 좋은 대처였다. 여자의 비명은 아이의 것만큼 높았다. 눈 앞에는 활활 타오르는 초가 있었다.

비명으로 울리는 세상이 불타올랐고, 쥬다이는 정신을 놓았다.

어찌나 세게 귀를 움켜쥐었던지 그때 흉터는 아직도 있었다. 물론 자라면서 이젠 조금 큰 점 정도로만 보이긴 했다. 그래도 손가락 개수만큼의 흔적들이 서로 붙어있어서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대충 15년을 가이드를 전전하며 지냈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덜 예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린애가 성적인 접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고통스럽기는 그때가 더했었다. 부모님은 그냥 뚝뚝 울면서 왜 자신들은 가이드의 자질이 없는지 한탄했다. 쥬다이는 처음으로 정부에서 파견 나온 가이드가 제 손을 잡아줬을 때를 기억했다.

그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무 것도 없이 가열해서 김만 쏟아내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느낌과 비슷했다. 다만 세상은 프라이팬과 달리 화끈거리기만 한 게 아니라 시끄럽기까지 했지만. 손을 잡은 그 순간은 그 손을 중심으로 세상이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쥬다이가 요한을 끌어안고 영화를 보는 것은 절대 이상하지 않다. 이런 고요한 세상이 얼마나 꿀 같은 세상인데. 이 더운 여름날에 귀마개를 끼고, 또 그러니까 에어컨은 에어컨대로 키고. 온도에는 얼마나 민감한지 담요도 두른 채로 요한을 끌어안는 수고까지 하면서 그는 영화를 보길 원했다.

이렇게 까지 해서 보는데 의미가 있어? 심지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아니야?”

당연하지. 네가 8세 이후로 제대로 만화영화를 못 본 꼬맹이의 슬픔을 알아?”

카라멜 팝콘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 새끼들은 센티넬용 담배는 만들면서 왜 센티넬용 카라멜 팝콘은 안 만들지? 이어 붙은 말에 요한은 풉,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쥬다이는 시끄러워서 영화에 집중을 못하겠다고 요한을 타박했다.

 영화는 인어공주였다. 붉은 색 머리카락을 포크로 빗어 내리는 에리얼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만한 물고기를 진심으로 대우해주는 건 요한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다. 인어공주가 어린이용이 아니었다면 분명 인어공주는 계급차별이 심화된 인어세계에서, 피라미 소녀의 어종 차별에 대항한 성공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녀의 약을 받아서 바다 밖으로 나아가는 게 시즌 2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이기는 했지만 요한의 영화 취향과는 조금 맞지 않았다. 그의 취향에는 묵직한 느와르나, 아니면 그만큼 처절한 멜로가 조금 더…… 자신은 뚝뚝 울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영화나 소설이 취향이었다. 아니면 머리를 깨는 것 같은 책이라거나. 여전히 빨간 머리 소녀는 서정적인 가락을 읊조리고 있었다. 입술을 열 때마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넘실거렸다.

Up where they walk, up were they run.

Up where they stay all day in the sun.

Wander in free.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쥬다이가 울고 있었다. 스마일이 그려진 귀마개를 쓰고 코끝이 빨개져서 우는 그는 여전히 자신을 껴안고 있어서 마주 안아 주었다. 노래가 끝나갔다. 마주 안아주자 이쪽을 보고 그가 웃었다. 코끝만이 아니라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 노래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Out of the sea, wish I could be part of the world.

 인어공주는 과연 미성이었다. 인어공주를 좋아해서 성인이 된 이후로 열 번은 넘게 보았다는 그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요한도 눈물이 나왔다. 그의 귀마개를 벗겨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건 이것대로 처절한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처절한 건 별로 요한의 취향이 아닌 것도 같았다. 

 화면에서 인어공주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이 천천히 추락하는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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