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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yugioh

요쥬 짧음

2017. 10. 31. 22:20

*허시님 달성표 기념으로 쓴 글은 여기에 올립니다! (짧아서)

 1109 허시님 달성표 36번 기념! 근데 이건 별로 안 짧구ㅋㅋㅋㅋㅋㅋㅋㅋ오랜만에 재밌었다.




36.

십 분을 서있으면 술에 취한 채로 비틀거리는 사람무리를 세 번은 볼 수 있을 골목이었다. 요한은 차가운 외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번화가의 뒷골목에서 부분부분 깨진 네온 사인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고 전기가 통하는 건지 아닌지, 전깃줄은 중간에 끊어진 채로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요한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었다.

 녹음된 파일이었기에 반주라고는 없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조용히 시에 음을 붙여 읊조리는 게 전부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아프리카 대륙과 중국가 만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겠죠. 눈을 감으면 네온사인이 아니라 오후의 창문에 스미는 햇빛이 보였다. 사랑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속삭이면서 푹신한 침대 위에서 자신의 머리를 넘겨주는 사람의 손은 따뜻했다. 읊는 목소리는 아름답다기보다도 따스했고. 고양이를 푹 끌어안고 자는 낮잠의 느낌이었다. 별것도 아니었지만 요한은 그 추억을 굉장히 좋아했고 자신이 알려주었던 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미성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없었다. 녹음해달라고 보챈 것도 요한이었다. 그는 한 번 웃고는, 그래,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그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2분이 조금 넘는 녹음이 몇 번이고 반복 되었다.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이의 공백은 꽤 길었다. 노래가 몇 번이고 다시 시작되는 동안, 맞은 편 가게 바깥에 걸린 커다란 벽시계는 부지런히 분침을 움직였다. 몇몇의 무리는 휘청거리면서 귀가를 했고 요한만이 변하지 않은 채로 굳게 서있었다. 다시 하나의 곡이 끝났고, 반복 사이의 틈이 그에게 고요를 가져다 주었다. 그 틈만이 그의 시계가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녹음을 시작하고 나서 그가 몇 초 정도 목을 가다듬었기 때문에 그 공백에는 원래 있었을 더 긴 정적이 있었다. 그 때 요한은 누군가가 지나치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 진짜 혼자서 저 정도로 마시는 사람이 있구나. 저렇게 마시다가 죽겠다. 급성뭐더라. 급성 알코올 중독?

 ,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저렇게 많이 마실 일이 얼마나 있겠어. 일상적으로 저렇게 마셨으면 벌써 죽었지.

 술에 어지간히 취했는지 웃기지도 않는 대화에 껄껄 웃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요한은 그들이 걸어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람들이 어디서 마셨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꼭 비슷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렇게 마시다 간 다 버리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몇 명이 막 한 가게를 막 빠져 나오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나무문은 도시 번화가의 뒷골목과 어지간히 안 어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나지막하게 밤거리를 물들여주던 목소리가 귀 끝을 빠져나갔다. 두통과 걱정 속에서, 삶은 막연하게 빠져나가고. 요한은 그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쉬는 타이밍을 좋아했었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시간은 그가 바라던 욕망을 이루겠죠. 그 문장을 읊는 목소리만큼이나 좋아했었다. 그가 요한과 언제고 눈을 마주쳐주었기 때문이었다.

 가게는 전형적인 술집이었다. 위스키도 병째로 팔고 바텐더 두 명이 칵테일도 만들어서 주는, 그런 종류의 술집이었다. 그리고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 호탕하게 웃으면서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었다. 쌓여있는 병들을 보아하니 오늘도 어제만큼 마신 모양이었다. 일상적으로 저렇게 마셨으면 이미 세상에 없을걸? 벌써 죽고 없지. 요한은 그 말을 곱씹었다.

 하하, 뭐야 주인장. 빼는 게 어딨어? 술집 주인이 손님이 사는 술을 거절하면 어떻게 해?

 아니, 나는 일하고 있잖아. . 여기서 더 취하면 큰일 난다고. 하하, 오늘은 안 되고 다음에 시간될 때 같이 한 잔 할까? 나보다 잘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봤네 그래. 그래도 이렇게 마시면 건강에 나빠. 내 참, 술집 주인이 손님 건강 걱정까지 해줘야 하나?

 내 걱정은 무슨, 안 해도 괜찮아! 하하, 고맙지만 이 정도론 정말 끄떡도 없다고.

 그리고 그렇게 주인장과 대화하던 남자는 손에 들린 잔을 빙글거리며 돌렸다. 벌개진 얼굴인데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잔을 돌리는 모습을 보자니 꼭 액체가 아니라 다른 게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요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미성까지는 아니었고 술에 취해서 다 꼬부라진 발음이었지만 요한에게만큼은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여서, 자연히 그 시에서 가장 좋아하던 문장이 떠올랐다. 당신은 당신의 비뚤어진 이웃을, 당신의 비뚤어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할 거예요.

 가게 내부는 그래도 생각보다 깔끔했다. 어두운 조명이었지만 어느 정도 깔끔한 맛이 있었고 잘 닦인 술잔들과 화려한 술병들이 벽을 장식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조금 빠른 기타곡조가 흐르고 있었고 그 곡은 지금 막 끝난 참이었다. 또 다시 잠깐의 틈이 있었다. 이번에는 느린 곡인지 조용한 피아노 반주가 흘렀다. 그리고 요한이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 동안 그 위에 서서히 여자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외국어인지 이해할 수 없는 가사가 뭉그러진 발음으로 흘러나오는 동안 요한은 쥬다이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서 풀어진 몸을 의자에 완전히 기댄 채로, 그는 여전히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요한이 그의 옆에 앉자 주인장은 자리를 비켜주었고  쥬다이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손에 들려 있던 잔을 비웠고.

 있지, 내가 생각해도 많이 마시긴 했어.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다들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다들 걱정해주더라. 그렇게 마시다간 골로 간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내가 매일 가게를 바꿔 갈 수밖에 없는 거야.

 요한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다시 잔을 채우는 쥬다이의 손을 보았다.

 ,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하겠어? 오늘도 집으로 가자고 할 거지?

 쥬다이는 또다시 술잔을 채웠다. 조명을 받아서 금색으로 보이는 술을 입 안에 홀랑 털어 넣는 걸 요한은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너는 알고 있으니까…… 말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말이야, 요한. 너는 알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뭐야? 정말로, 아직도. 내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쥬다이는 다 마신 잔을 내려 놓지 않고 손에서 돌리면서 몇 번 장난을 치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요한에게로 몸을 숙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고개를 돌릴 정도로 가까이, 술냄새가 훅 끼칠 정도로. 요한은 쥬다이를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 나는 이미 이런데, 내가 어떻게 일상을 가질 수 있겠어?

둘은 너무 가까웠고, 조명은 어두웠고, 곡은 나른했다. 눈을 내리깐 쥬다이의 얼굴을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의 눈동자는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건 그의 말대로 변해버린 색이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색이어서 요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시간이 늦었으니까, 집에 가자. 쥬다이.”




06.

감정은 물결과 같이 다가왔다. 점점이 찍히는 것은 파도가 아니라 별빛이었고 선으로 흐르는 것은 물결이 아니라 반짝임이었다. 파랑의 고저를 따라 흐르는 빛은 부드럽게 해변을 적셨다. 쥬다이는 그 빛으로 요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방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은 바다뿐이었고 뒤는 몇 안 되는 민가가 있었으나, 그마저도 깊은 밤에는 적막으로 덮여있었다. 쥬다이는 뒷머리를 쓸어내리면서 왜 이 깊은 밤에 자신과 요한, 단 둘만 함께 있는지 생각했다. 생각의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도에서부터 온 해류가 흘러서 밤에도 온도가 높다는 바다는, 해가 다시금 오를 때까지 출렁거렸다. 해안선 가까이의 모래는 파도가 칠 때마다 새로이 물을 맞았다. 바닷물을 한 번 맞닥뜨리고 다시금 밤공기를 들이키면 소금기에도 숨은 시원했다. 젖은 모래를 밟으면 발가락 사이사이를 모래가 채웠다. 살짝 남은 발자국은 곧 파도가 거품을 부글거리며 지웠다. 발을 거품이 씻어내 주면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마음을 씻어주는 거품을 실은 파도는 언제쯤 올 것인지, 쥬다이는 궁금했다.

몇 발자국 앞에는 친구가 서있었다. 달빛에 젖은 머리가 태양의 밑에서보다도 푸르게 빛났다. 자신의 발바닥을 거품이 쓸고 지나갈 때 그의 정강이에 물결이 스치고 지나갔다. 조개 껍질 하나를 주워 든 손을 붙잡고 싶어 몇 걸음 더 다가가면, 자신의 발목을 물결이 쓸고 지나갔고 그의 종아리를 너울이 쓸고 지나갔다. 허벅지를 쓸고 가는 파도는 그의 허리를 이미 지나온 것들이었다. 느리게 나아가는 그를 잡기에는 자신의 다리가 물 속에서는 너무 느렸다. 앞선 마음을 따라 상체만 자꾸 앞으로 나아갔다. 고개를 숙이자 물 속을 딛고 있는 두 다리가 보였다. 잠겨가고 있었다. 아직 가슴은 물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머리 끝까지 잠긴 기분이었다. 아니 세상이 온통 잠겨있는 것 같았다. 저 달마저도, 그렇지 않다면 왜 저렇게 푸른 빛을 요한에게 내려주는 것일까?

감정을 자각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최초의 자각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어렴풋이, 새벽에 언제 떴는지 모르는 그믐달처럼 천천히 두각을 드러낸 것은 이윽고 밤바다를 훤히 밝히는 빛이 되었다. 어쩌면 되어버렸다는 단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둘은 그냥 마주쳤고, 그 만남에는 정말 아무 이유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친해지고, 그렇게 되니까. 쥬다이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입술 끝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친구는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으며 웃고 있었다. 파르스름하게 반짝이는 흰 티가 바다에 반사되었다.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하얀 형체는 스러지곤 했다. 그 색깔의 파랑에 쥬다이의 감정도 함께 흔들렸다. 쥬다이는 상체를 숙여 바다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달빛으로 반짝거리는 물에 고개를 집어넣었다가 빼면, 그제야 숨은 시원해지곤 했다. 머리칼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에 눈을 못 뜨고 있으면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던 친구가 첨벙첨벙 이리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웃는 소리도 들렸다. 쥬다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웃음이었다. 쥬다이는 저도 모르게 그 웃음소리를 따라서 실실 웃을 뻔했다.

쥬다이는 눈도 뜨지도 못한 채 숨을 들이켰다. 한 손으로는 앞을 보지도, 굳건한 두 다리를 보지도 못하는 눈을 가렸고, 다른 손으로는 실실 웃을 뻔한 입을 가렸다. 눈을 떠도 어차피 까만 밤뿐이었다. 별빛은 달빛에 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달빛은 바다에서 반사될 뿐 세상을 밝히지는 못했다.

쥬다이, 여기 정말 좋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좋아했었다. 자각하고 나니까 돌이킬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참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눈가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던 물이 이제야 멈췄다. 그제야 뜬 실눈 사이로 본 너는 또 말갛게 웃으면서 달빛을 받고 있었다. 머리카락의 끝에, 바닷물에 젖은 흰 티의 가장자리에서 은은하게 빛이 비쳤다. 계속 수평선만을 바라보던 네가 이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알려줘서 고마워. 진짜 좋다! 이렇게 따뜻한 밤바다라니, 꿈만 같아.”

웃고 있는 눈매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역시 너를 좋아하는구나

수도 없이 자각한 순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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