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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yugioh

요쥬 36

2017. 10. 9. 17:28

*유희왕 제넥스 요한X쥬다이 커플링을 다루고 있습니다. 

*짧은 글

*오늘의 문장에서 나온 "차라리 함께 웃으며 사라질까, 그게 좋겠지."에서 시작했는데

 어디로 갔는지...ㅋㅋㅋㅋㅋ


  순수는 소매 끝에 매달려 있었다. 검댕 따위는 묻지 않은 소매에 달린 햇살이 곧 순수함이었다. 처음으로 쥬다이의 소매가 젖었던 때는 요한에게 받은 고백에 저도 모르게 놀라 눈물이 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해야 한두 방울이었고, 그나마도 요한의 손이 대부분 닦아주었기 때문에 소매는 여전히 깨끗했다. 그는 곧 웃으면서 마찬가지로 똑같이 깨끗한 요한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잡은 손 사이로 햇빛이 아슬아슬 매달렸다. 쥬다이는 그때 햇살의 간질거림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았다. 그가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순수하고 깨끗한 충족감은 요한에게서만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는 깍지를 낀 손 사이에 차는 땀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쥬다이는 말끔한 소매만을 알았다. 그는 깨끗한 사랑만을 알았다. 이것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변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순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생각한 쥬다이가 가장 먼저 변해버렸다. 변하고 나니 순수는 깨지기 쉬운 얄팍한 유리 같은 것이었다. 쥬다이의 손은 여전히 요한과 닿아있었다. 요한의 소매를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파들파들 떨릴 정도로 세게 쥔 손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요한을 놓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원해서가 아니었다.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한 번 놓치면 영원히 놓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멋대로 손을 조종하고 있었다. 요한은 여전히 깨끗한 손으로 자신의 떨리는 손을 감싸주고 있었다. 변한 것은 자기자신뿐이었다. 으레 스스로의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쥬다이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을 쏟은 다음에 자신이 술에 취했다는 사실을 확 깨닫는 것처럼, 그에게도 변화를 알려주는 분명한 표지가 있었다. 외면하려고 해야 외면할 수가 없는 표지가 있었다. 화창한 낮이 기울고 하늘을 가득 적시는 노을처럼 선명한 표지가 있었다.


자신의 소매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다. 제 눈물인 줄 알았는데 볼은 여전히 건조했다. 까슬해서 거칠 정도로 건조했다. 그는 표정을 숨기고 싶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파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쥬다이는 자신의 소매가 더는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변한 것은 자기자신뿐이었다. 눈물이 소매를 적시고 들어갔다. 쥬다이는 요한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요한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순간이라도 놓으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거야. 그건 더 이상 불안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쥬다이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는 자신을 깨달았고, 요한이 우는데도 여전히 까슬한 자신의 볼을 알아차리면서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감정은 이제 사랑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진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차라리,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은 더는 사랑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영원한 것은 순수가 아니라 미련이었다. 이런 감정이 과거의 저와 요한이 그렇게도 행복하게 나누었던 사랑과 동류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우는 요한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요한을 놓아줄 수도 없었다. 소매 끝이 까맣게 물들어갔다. 노을은 점멸하고 있었다. 내 곁에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없으면 차라리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너는 이렇게 변해버린 내 곁에서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거 아냐? 소매 끝에 그림자가 가득 졌다. 쥬다이는 이런 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런 추적거리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인정한다면 과거의 순수를 해치우는 것이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소매에서 마지막 햇빛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줘. 불행밖에 없다 하더라도 같이 있어줘.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칠흑 같은 밤이 와도 내 곁에 있어줘. 나는 너랑 함께라면 지옥도 괜찮아. 같이 웃으면서 죽어도 좋아. 나락으로 떨어져도 괜찮아. 심지어 그곳이 천국이라고 해도, 너랑 함께라면 아무 상관 없을 거야.


 "요한.”


  창 밖에서는 밤이 점점이 찍히고 있었다. 노란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이 그믐인지 아닌지도 쥬다이는 몰랐지만, 지금 이곳에 노란 달이 없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달의 부재에도 도시의 밤은 어렴풋이 밝았다. 가로등은 하나 둘 순서대로 켜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저녁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소리는 도란도란 들려왔다. 빨간 목줄을 맨 강아지는 벤치에 몸을 비비고 흙냄새를 맡았다. 분홍색 발을 검정으로 물들여 단단히 하기 위해서, 강아지는 조그만 세상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노란 달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강아지는 작게 짖으면서 주인보다도 앞에서 걸어나갔다. 산책로를 비추는 가로등 빛은 노란 색보다는 주황색에 가까웠다. 자연의 순수한 빛은 아니었지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산책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소리와 냄새가 얽힌 빛이 방으로 어렴풋이 들어왔다.


  쥬다이는 그제야 자신의 볼이 축축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까만 소매 끝에 눈물이 새로 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가는 이미 붉었다. 여전히 손은 놓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쓰다듬어 줄 수가 없어 얼굴을 가까이 했다.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는 물어뜯은 자국이 있었다. 


 “좋아해…….”


  쥬다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게 사랑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니 이 말은 거짓말이라고. 살면서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거짓말일 뿐이라고.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손길에 눈을 감으면서 쥬다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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