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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yugioh

요쥬 35

2017. 9. 27. 04:48

*유희왕 제넥스 요한X쥬다이 커플링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au입니다. 보고 싶은 장면만 쓰는 데다가 장면도 마음대로 바꿔버리고... 이제 정말 au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스포가 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대로 쓴 글이라 시간 순서가 왔다갔다합니다 주의.

*마지막! 엔딩! 끝! 각색!




 쥬다이는 총을 만졌다. 사냥용으로 만들어진 총은 긴 몸체를 가지고 있었고 총구는 당연하게도 동그랬다. 말끔하고 차가운 쇠 구멍을 매만지고는 등 뒤로 총을 멨다. 오후가 되면 총의 끝은 달궈질 것이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쇠를 만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후회가 아니기만을 바랐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불가능을 바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사냥에 나서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신었다. 짙은 갈색의 신발은 빗방울도 스며들 수 없어 보였지만 땀도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습관처럼 바닥에 몇 번 신발을 두드리자 통통 소리가 울렸다.

 

 쥬다이는 현관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몇 분만 걸어가면 숲이 펼쳐져 있었다. 몇 달 전에 다친 다리는 아직도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욱신거리곤 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으나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절뚝거렸다. 그가 향한 숲은 수렵활동이 허가된 데다가 규모가 꽤 있는 편에 속해서 인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야생동물 보호 기간이었기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인적 없는 길을 걸으면서 쥬다이는 바짝 마른 나뭇잎들을 가죽구두로 밟았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를 눈여겨 보면 풀벌레들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쥬다이는 왠지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서 타박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불 낼 일 있어? 무심코 본 휴대폰에는 통화 불가지역이 찍혀있었다. 슬슬 정오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날이 흐린 탓에 그림자가 없어 시간이 가는 것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많이 흘러가 있었다.

 

 훌쩍 시간이 지난 탓에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몇 개의 언덕을 더 넘고 나자 발에 송골송골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그가 걱정한 대로 통기성이 최악이었다. 가끔 웅덩이를 밟아도 멀쩡한 것은 좋았지만 땀이 차니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쥬다이는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서 물을 마셨다. 목이 탔다. 긴장되어서라거나, 다리가 욱신거려서는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오래 걸어서 목이 마른 것뿐이다. 사람은 참 일상적인 생물이다. 살인하러 가는 길에도 목은 타고 신발은 편하길 바란다. 언덕을 하나 넘으면 숨이 벅차고 언덕 너머의 길은 편하길 바란다. 사람을 죽이러 가는 길에 땀 한 방울 나지 않길 원했다. 가능하면 돌아오는 길에도 아침에 나왔을 때처럼 보송보송한 상태이길 바랐다. 사람은 불가능을 알면서도 바라곤 한다. 쥬다이는 자신이 결코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꽤 많이 걸었는지 슬슬 발이 아프다고 생각할 때, 쥬다이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통나무집이 흐릿하게 보였다.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안테나 하나뿐이었지만 통화가 가능한 지역이었다. 시간은 또 몇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대각선으로 비켜 지른 길인데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마 오전에 넋 놓고 걸은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쥬다이는 생각했다. 오래 걸어서 그런지 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어찌나 간절했는지 꼭 어디서 담배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충분히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러니까 철조망 사이의 빈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쥬다이는 담배 냄새가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쥬다이는 아직 자신이 있는 쪽을 보지 않은 요한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철조망 사이로 그의 하얀 피부가 보였다. 흐린 날씨에도 티 하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전과 다름없이 멀쩡했다. 가늠쇠 사이로 본 그의 왼 볼은 조금 수척해 있었으나, 오늘 면도를 했는지 깔끔했다. 그의 코는 오히려 수척해진 탓에 기억보다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왼눈은 찌푸려진 미간과 함께 조금 빛을 잃은 상태였으나, 2주일 동안 감금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눈동자는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흐렸다. 그는 뭔가 고민하는 듯 양 눈썹을 살짝 기울이고 있었다. 파란 눈동자가 담배 끝을 보는 것이 쥬다이의 눈에 담겼다. 찡그려져 있던 양 눈썹이 곧 펴지는 모습도 눈에 보였다.

 

LONDON LIMITED 07

 

 컨트롤이 아주 간략하고 짧게 내뱉은 축사에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의 분위기는 조금 더 밝아졌다. 쥬다이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사람들 이야기 소리에 묻힌 탓에, 사람들이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춤추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샴페인 잔을 쟁반에 놓고 웨이터인 척하는 동료의 뺨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그는 붉은 얼굴로 유리잔을 하나 내밀었다. 쥬다이는 고맙게 받아들고는 음향 담당을 찾으러 일어섰다.

 

 안쪽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복도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여기저기서 여자들에게 내일 계획 있냐고 묻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쥬다이는 끌끌 웃으면서 빤한 레퍼토리들 사이를 지나쳤다. 뻔하다고 싫은 것은 아니었다. 서로 호감이 충분히 쌓인 사람들끼리는 웃음소리도 달랐다. 살짝 달뜬 웃음소리에 섞인 알코올이 통통 터지는 복도를 지나서 복층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수록 주위의 사람들 수가 찬찬히 줄어들었다. 마지막 계단에 이르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음악 소리는 작게 멀리서 들렸고, 위는 1층에서 스며드는 빛으로 어렴풋이 밝았다. 머리 위에는 복층답게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지만 불빛은 꺼져 있었다. 검푸른 위층을 밝히는 빛은 아래층 벽에 달린 붉은 색 조명으로부터 스며든 빛이 전부였다.

 

요한의 파란 머리카락 위로 붉은빛이 일렁거렸다. 그는 자신을 보지 못했다. 부드러운 샹송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쥬다이의 발걸음 소리가 묻혀버린 탓이었다. 쥬다이는 미소를 띠고 자신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연인을 바라보았다. 파란색 머리칼은 잘 정리하려고 한 티가 났지만, 슬슬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볼은 아래에서 스며드는 조명 빛 탓인지 몰라도 혈색이 좋아 보였다. 얼굴선을 따라가다 보면 동그란 이마로 시선이 갔다. 그다음에는 몇 번이고 서로 비볐던 콧잔등이 있었고, 처음으로 맞추었던 입술을 보았다. 입술의 양쪽 끝은 어떤 기울기도 없이 직선을 이루고 있었지만, 곧 동그란 원형을 그렸다. 살짝 찌푸려져 있던 양 눈썹이 보였다.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입이 살짝 떨어졌다. 그의 양 눈썹이 잠깐 일그러졌다가 펴지려는 찰나였다. 그의 두 눈이 가늠쇠 사이에서 쥬다이를 담았다. 눈동자에 새로운 빛이 어리려 하는 순간에. 쥬다이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나고 나서 아주 잠깐 요한의 몸은 서 있었다. 가느다란 사선이 그의 입가에 걸쳐졌다가 사라졌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요한을 쥬다이는 눈도 감지 못하고 그대로 보았다. 나뭇바닥으로 된 테라스에 피가 고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대로 시선을 끌고 오니 아까 웅덩이를 밟았을 때 엉망이 된 가죽신이 보였다. 쥬다이는 얼굴을 한 번 훔쳤다. 땀이 났는지 손에 물기가 흥건히 묻어났다. 총을 다시 등 뒤로 돌려 메었다. 쥬다이는 몇 개의 언덕을 넘었던 탓에 숨이 가쁘다고 생각했다. 엉망이 된 손바닥으로는 더 닦는 의미가 없어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감정과 미련은 질긴 물건이었다. 질긴 데다가 축축하기까지 했다. 그는 절뚝거리며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감정을 이로 질겅였다. 자신은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의 두 눈에 마지막으로 어리려는 감정 역시 질기고 축축한 감정이었으므로. 자신은 그 눈이 언제나 런던의 뿌연 하늘색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네 눈빛에 어린 것은 그 색만큼 뿌연 담배 연기였다. 그 눈이 그렇게 짙게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네 시선 탓에 나는 영영 너를 용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련과 후회는 축축하고 질겼다. 겨우 한 걸음을 내딛자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구두 바닥에 바스러졌다. 그 소리는 옛날에 얼음이 든 유리잔을 부딪쳤던 소리와 비슷했다.

 

요한은 샴페인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가 웃으면서 자신을 반겼을 때 그의 손에 있는 유리잔에는 얼음이 잔뜩 들은 펀치가 있었다. 알코올 하나 없는 음료를 마시면서도 그는 잘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이미 술에 취해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1층이 보이는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아래에서 스며드는 붉은빛에는 샹송 음악이 녹아들어 있었다. 홍조를 띠는 볼과 퍽 어울렸다. 이거 프랑스 음악이지? 꽤 좋은 것 같아. 부드럽고 부담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붉었다. 조명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미 술을 마신 상태이고, 술을 깨려고 펀치를 마시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시종일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호선을 그리는 눈매는 한 번도 흐트러지질 않았다. 사랑을 위장하는 연기와는 달랐다. 그 두 눈동자에는 정말로 부드러운 빛이 들어가 있었다. 쥬다이는 그게 진심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요한 역시 거짓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있잖아, 쥬다이. 너가,”

 

그가 했던 수많은 고백이 진심이었듯 그날 꺼낸 말 역시 진실이었다. 그의 눈썹은 뻔할 정도로 부드러운 아치형을 그리고 있었고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애정만을 품고 있었다. 어느새 가까이 온 쥬다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요한은 잠깐 말을 골랐다. 그의 눈가에 투명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슬픔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술에 취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항상 안에 갈무리하고 있던 감정을 밖으로 보인 것뿐이었다. 그의 입은 이제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활기를 담고 있었다.

 

“너가, 내가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거야.”

 

정말 좋아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정말로 부드러웠다.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행복해져서 쥬다이는 요한에게 입을 맞췄다. 요한의 입술에서는 달달한 펀치의 맛이 났다. 자신의 입에서 나는 샴페인의 맛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둘은 분명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달달한 충족감이었다. 처음 마음이 통했을 때부터 이어졌던 감정이었다. 마음 끝에서부터 빠듯하게 채워지는 행복이 있었다. 둘은 분명히 그 감각을 공유했다. 그게 서로가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유리잔 안에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샹송 소리에 묻혔다붉은빛은 여전히 아래에서부터 스며들었다. 잠깐 입술이 떨어진 순간에도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애정과 사랑을 담고 있었다. 자신은 그 눈빛에 평생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쥬다이는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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