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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드럴로키 교류지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판매는 하지 않았으므로 공개해도 될 거라고 생각해 올립니다!
*펜드럴로키가 주 커플링이긴 하지만 토르도 많이 등장하며, 스킨쉽은 일절 없습니다.ㅜㅜ어린 시절~토르1이후까지의 시간대입니다.
*인피니티 워 개봉 전에 쓴 글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펜드럴은 숨을 가다듬었다. 가다듬는다고 해봐야 별 것 아니긴 했다. 숨을 모았다가 크게 한번 내쉰다. 그게 전부였다. 이래도 긴장은 풀리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나이는 아직 어렸고, 오늘 처음으로 왕족을 뵙는 것이니까. 그와 나이가 같은 첫째 왕자, 조금 어리다고 들은 둘째 왕자. 그리고 그 둘의 부모이자 만물의 부모이신 오딘과 프리가. 이야기로만 들어본 왕족을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데 다리가 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프리가와 막역한 친구 사이라고 했다. 너도 토르 왕자님과 그렇게 되면 좋겠구나. 세대를 넘어서도 이어지는 우정, 멋있잖니? 셔츠 깃을 바로 잡으시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요. 프리가님은 그때 왕족이 아니셨겠지만, 왕자님은 이미 왕족이시잖아요. 수염도 안 난 입가가 뾰로통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자, 가야 할 시간이구나. 어머니가 펴주신 목깃을 괜히 꼬부라트렸다.
“너도 알게 될 거란다. 왕족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야.”
어머니와 손을 잡은 채로 대기실에서 나오자 두 명의 시종이 인사했다. 펜드럴은 자신이 높은 신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른 두 명이 자신에게 깍듯이 인사하자 마주 인사할 뻔했다. 자신의 손을 꼭 잡아준 어머니 덕에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아스가르드는 신분이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았고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관습들이 있었다.
두 명의 시종이 문을 열었다. 펜드럴 자신의 다섯 배는 될 커다란 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보다도, 그 두 배보다도 클 문이었다. 흰 상앗빛의 고아한 문에는 선이 얇고 화려한 금장식이 있었다. 그 본래의 가치보다도 세공이 더 가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식이었다. 문은 천천히, 소리 없이 열렸다. 완전히 열려 멈출 때야 묵직한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 앞으로는 다시 긴 복도가 놓여있었다. 어머니의 허리부터 저 까마득한 천장 바로 아래까지 큰 창문들이 양쪽으로 나있었다. 발아래에는 붉고 두꺼운, 모든 소리와 빛을 흡수할 것만 같은 카펫이 깔려있었다.
어머니는 긴 드레스를 끌며 걸어갔다. 사뿐히 걷는 자리마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이 카펫을 장식했다. 펜드럴은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낯설고 붉은 길을 나아갔다. 카펫의 가장자리에 놓인 금색 문양은 화려했고 어지러웠다. 빛에 따라 반짝이는 형태가 달랐다. 긴 복도의 끝에는 새로운 문이 있었다. 금장식과 그 사이사이에 놓인 청색과 녹색의 보석들. 양벽의 커다란 창에서 비추는 태양의 빛. 햇살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보석의 반사광들에 펜드럴은 숨을 어떻게 쉬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떻게 서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저 안에는 정말 고귀한 사람들이 있어.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다시 한번, 펜드럴 자신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무수한 보석의 영광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안에는 황금빛의 머리칼을 가진 우아한 왕비님이 있었다. 왕비님의 금빛 머리칼을 빼어 닮은 첫째 왕자님이 있었다. 황금으로 된 지팡이와 붉은 망토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환영하는 폐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 뒤에서, 황금으로 된 의자에서 가만히 앉아 빛이 공기 중으로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는 검은 머리 소년이 있었다. 이윽고 소년은 고개를 돌렸고. 시선은 소리 없이 마주쳤다.
펜드럴은 그 순간의 호흡을 기억한다.
숨의 끝
펜드럴은 궁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어렸을 때야 조금 겁을 먹고 오긴 했지만 이 나이가 되고 키가 어른들보다도 커졌을 때는 이미 왕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가끔 나이 든 장로들은 그런 그를 보고 쯧쯧 혀를 차기도 했으나, 그들은 이 왕궁의 자랑스러운 첫째 왕자님을 보고도 혀를 차는 이들이었으니 펜드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설령 신경 썼다고 해도, 그의 행동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어렸을 때도 그는 왕궁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고 싶은 날이면 결국 가고야 마는 성정이었다.
그는 토르와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왕비님의 말에 따라, 첫날부터 왕자들이 지내는 거처에 출입이 허가되었다. 왕궁의 길이 복잡하여 몇 번은 어머니께서 배웅해주셨으나, 그것도 곧 끝났다. 어머니는 정문에서부터 프리가 왕비님이 계시는 정원으로 곧장 가셨고, 펜드럴 자신은 왕궁 정문에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왕자들의 처소까지 직접 가야 했다. 결국 왕자들과 만나 의례상 안부를 묻고 나서는 다시 왕비님의 정원으로 가 어머니를 뵈었지만, 어쨌든 그건 꼭 해야 하는 관례였다. 아스가르드는 역사가 긴 나라였고, 이유 없이 지켜지는 관습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났을 때, 한 시종이 웬 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떠돌고 있는 것을 의아히 여겨 말을 물었다. 시종의 배려였으나 어린 시절의 펜드럴은 왕궁이라는 거대한 곳에 이미 기가 눌려있는 상태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온갖 소설과 상황이 펼쳐져 있어서, 그가 맞는 길을 찾았음에도 ‘아! 내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들어왔나 봐!’하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어지는 횡설수설한 대화에 시종도, 펜드럴 자신도 더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금발의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토르는 몇 번 같이 논 자신을 먼발치에서도 발견했고, 순식간에 달려와서 시종에게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해주었다. 로키는 먼발치에서 여전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물론 다 크고 나서야 궁의 지리에 펜드럴만큼 훤한 사람이 드물었다. 그가 지나가면 오랜 시간 보아온 시종들이 그에게 가볍게 인사했고 그는 손인사로 응답해주었다. 정문에서부터 계단을 올라와 분수를 넘어가서 나오는 뜰은 왕자들이 곧잘 노는 놀이터였다. 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넓었으나, 어쨌든 이 궁전의 여주인이 보살피는 곳이었으므로 모두가 뜰이라고 불렀다. 야트막한 숲과 낮은 담으로 분리된 뜰은 왕자 두 명과 그들의 첫 친구였던 펜드럴이 뛰어놀던 곳이다. 곧 다른 이들도 점차 추가되어갔지만. 시프와 볼스테그, 호건도 이 무렵 만난 친구들이었다. 대부분은 토르 나이와 같거나 조금 많았고, 로키와 비슷한 나이는 없었다.
로키와 친구들의 나이차는 그리 큰 나이차는 아니었다. 몸이 다 커지고 나서 로키는 자연스럽게 토르의 친구들과도 어울렸다. 그러나 크기 전에, 모두가 어렸던 그때에는 그 정도 나이차도 꽤 컸음이 틀림없다. 친구들은 종종 담을 넘어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로키는 여전히 뜰에 남아있었다.
펜드럴은 흘긋 로키를 돌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노란 꽃들 사이에서 까만 머리칼이 공기를 먹었다. 그리고 노란 꽃들 아래로 펼쳐진 초록빛의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것과 같은 녹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았다. 그 먼 거리에서 어떻게 시선이 맞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선은 명징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했던 탓에, 펜드럴은 로키의 눈을 몇 초 동안 똑바로 마주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겨우 시선을 뗀 건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급하게 멈춰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로키는 이미 어머니들의 다과회로 걸음을 옮긴 후였다. 아무도 없는 노란 꽃밭에서 이파리들만이 잘게 떨고 있었다. 펜드럴은 달려서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이마에 방울방울 맺힌 땀을 훔쳤다. 눈을 위로 돌리니 숲은 온통 푸르렀다. 방금 본 눈동자와 같은 녹음이었다. 펜드럴은 이윽고 친구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곧 간다고 외치면서 다시 달렸다. 숲 가장자리에서 산새들이 날아올랐다. 풀을 밟을 때마다 상쾌한 녹색 향이 코를 간질였다. 펜드럴은 그때 녹색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이후로 펜드럴은 로키에게 같이 숲으로 가서 놀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 로키는 매번 어머니는 담을 넘지 말라고 하셨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펜드럴은 매번 다시 물어보았다.
로키. 오늘은 같이 숲에서 술래잡기를 하자!
로키, 오늘은 숲에 가고 싶지 않아?
로키. 오늘도 담을 넘기 싫어?
로키, 오늘은!
로키!
“안 가! 안 간다고! 네가 아무리 그래도 안 가!”
항상 은은한 예절만 지키던 로키가 펜드럴한테 짜증을 쏟아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동자에는 짜증이 듬뿍 묻어있었고 목소리는 구깃구깃 구겨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홱 올라간 그의 목소리와 나무 그늘 속에서 저 혼자 빛나고 있는 눈동자에 펜드럴은 조금 당황했으나 이윽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뭐야? 왜 여기 앉아?”
“네가 숲으로 가기 싫다면 내가 여기 있는 수밖에 없지!”
뻔뻔하게 자기 옆에 앉아 그렇게 말하는 펜드럴을 로키는 경멸을 담아 쳐다보았다. “하…….”, “허…….” 로키의 입가에서는 그런 뜻 모를 감탄사들만 몇 번 나오더니,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펜드럴은 침묵을 지키다가는 곧 잔디밭에 누웠고 바람만 몇 번 스쳐 지나갔다. 펜드럴은 시끄럽기로 소문난 친구들 중에서도 활달한 아이였으나, 가끔은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바람과 고요함이 딱 낮잠 자기 좋았다. 생각해보면 왕궁에 오기 전까지 펜드럴은 종종 아버지의 해먹을 빼앗아 쓰곤 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해먹과 잔디의 촉감을 졸음 속에서 비교하다가, 조그맣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어…… 뭐라고?”
놓치지 않았다고 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졸음에 겨운 눈을 뜨자 이쪽을 바라보는 녹색 눈이 바로 보였다.
“……졸려?”
“어, 조금. 조용하고 편하고, 따뜻하고 시원하네…….”
“따뜻하고 시원한 게 뭐야. 바보 같아.”
로키의 눈가가 곡선으로 바뀌면서 웃음소리를 만들어내었다. 펜드럴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선을 숲으로 돌린 로키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시답잖은 내용이었지만 숲에서 놀기 신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나눈 대화다운 대화였다. 애당초 펜드럴은 진지한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은 커서도 매한가지였다. 가벼운 대화와 그 속에 담긴 애정 같은 것들이 좋았다. 애정만 담겼다면 진지해도 좋았다. 하지만 진지한 대화들은 대부분 애정과 호감이나 존경, 사랑과 같은 좋은 감정들만 담고 있지 않았다. 의무, 금지, 강제, 원망, 억울함…… 그리고 말로 바꿀 수 없는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펜드럴은 그러한 어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곤 했다.
숲 쪽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토르와 그의 친구들의 귀환이었다. 로키의 목이 조금 뻣뻣해진다고 생각했다. 정돈된 그의 검은 머리칼은 흔들리지도 않고 멈추어 있었다. 하얀 목덜미에 검은 머리카락이 대조적이어서, 펜드럴은 그도 모르게 손을 가져갔다. 살갗에 손이 닿기도 전에 로키는 화들짝 놀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눈과 시선이 맞았다. 그래, 그때가 처음으로 마주한 어둠이었다. 그 눈동자의 빛은 단순히 짜증을 담고 그를 바라보던 눈과 달랐다. 마음대로 옆에 앉았을 때 보였던 경멸과도 달랐다.
어린 펜드럴은 그 눈동자의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펜드럴은 겨우 웃으면서 머리가 헝클어졌노라고 말해주었다.
로키는 곧 평소의 로키로 돌아갔다. 크게 뜬 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조금 떨리는 것 같았던 눈가는 아예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로키와 펜드럴의 이름을 외치는 토르의 부름에 몸을 일으키는 자세도 평소와 같았다. 나중에 펜드럴은 그게 우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는 안과 밖이 같은 것을 우아함이라고 했었다. 분명히 펜드럴도 그 말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 펜드럴이 느낀 우아함이란 요동치는 물살을 가둔 도자기병이었다. 매끄럽고 순수하게 빛나는 먹을 담은 백자였다.
로키는 언제나처럼 소리 없는 시선으로 형과 그 친구들을 맞이했다. 어머니들이 다과회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면 조용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펜드럴은 여느 때와 같은 상황이 전혀 달라 보였다. 로키의 내면이 저렇게 고요할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그 모순이 그렇게 두드러져 보일 수가 없었다. 로키는 조용히 웃으면서 프리가의 볼에 키스하고 토르의 어깨를 쳐주었다. 하지만 눈은 곡선을 이루지 않았다. 토르와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 섞으면서도 그의 눈이 조금 전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지는 않았다.
숲으로 떠나기 전에는 분명 웃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저번에 놀러 왔을 때는 어머니에게 로키는 예절이 바르고 안과 밖이 같으니, 프리가 왕비님의 우아함을 빼닮은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 보니 그것은 전부, 전부……. 펜드럴은 로키의 우아함을 실감했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동생에게 그러한 우아함이 있다는 것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커서 생각해보니 사실 그건 우아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펜드럴은 로키의 마음을 엿보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로키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것이 조용한 웃음은 아님을 알았다. 로키는 고요하지 않았다.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 크게 뜨인 눈과, 순간 떨리던 손과, 살짝 벌려진 창백한 입술에 담긴 감정은 질투도, 적의도, 배신감도 아니었다. 그렇게 이름 붙이기엔 너무 연약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그것들이 섞였다고 말하기엔 너무 순수했으며, 그것들이 희석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짙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감정이었다. 어른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변덕적이었고, 어두웠고, 짙게 날뛰는 것이었다. 고요한 녹색 홍채에서 새까만 동공으로 흘러내리는 감정이었다.
펜드럴은 그것을 안고 웃는 로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녹색의 우아함을 깨달았다. 이미 사라진 우아함이었다. 펜드럴은 그때의 숨을 기억한다. 그때의 우아함에서는 땅에 떨어진 풀잎의 향기가 났다. 펜드럴은 로키에게 묻고 싶었으나, 무엇을 묻고 싶은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자, 이 스승님에게 묻고 싶으신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펜드럴은 종종 토르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 무술 수업을 듣는 토르에게 달려들면, 토르는 익숙하게 자신의 목검을 받아내었다. 그러게 무술장에서 한바탕 싸운 날에 다음 수업을 지각하는 건 이미 습관이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머리를 젖은 수건으로 툭툭 닦다가 고개를 들면, 문학 선생님이 저희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선생님의 왼쪽에는 꼭 로키가 있었다.
그 날은 스승님의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선생님은 지각한 토르와 펜드럴을 혼내지도 않고 나무 그늘로 끌고 가 시원한 보리차를 먹였다.
“이건 이 스승이 좋아하는 미드가르드의 문물입니다. 동방의 차라고 하지요.”
“차가 뭔데?”
스승에게 존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건 토르와 로키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낮추어 말하는 건 토르뿐이었다. 그가 스승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토르는 스승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것과 관습은 다른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관습에 칭칭 매여있었다.
“식물의 잎이나 곡물 따위를 물로 달여 만든 향기로운 음료이지요.”
이번엔 펜드럴이 물을 차례였다. 스승은 질문을 좋아했고, 그들의 학생에게 수업을 할 때마다 질문을 한 가지 던질 것을 요구했다.
“그게 뭐가 좋은가요, 스승님?”
“많은 이점이 있지요. 몸에도 좋다고 여겨지지만, 무엇보다 차분한 시간을 가지게 해줍니다. 보통의 차는 이보다 따뜻하지요. 그걸 손에 들고 한 모금씩 그때의 공기와 마시는 겁니다.”
선생님의 나이는 궁정 학자 치고는 젊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비상한 머리와 훌륭한 지성을 인정받은 인재였다. 게다가 아이를 좋아하는 성품과 따스한 성미까지, 조금 여리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으나 모두가 왕자들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껄껄 웃더니 마법을 써, 보리차가 든 통을 옥색의 도자기 주전자로 바꾸었다. 로키는 눈을 반짝이며 그 모습을 보았다.
그 주전자에서는 처음 맡아보는 향이 났다. 펜드럴과 로키는 호감을 표했고, 토르는 바뀐 주전자에 손을 데려다가 그것이 뜨거워 놀랐다. 스승은 토르에게 괜찮냐고 묻고는 웃었다. 신분과 상관없이, 스승의 눈에는 하나같이 귀여운 제자들이었다.
“자, 제자님들, 이쪽 손은 이리 받치고 저쪽 손은 이리 가져와 잔을 감싸세요. 어때요, 우아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펜드럴은 무심코 로키를 돌아보았다. 로키는 펜드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을 반쯤 내리깔고 스승의 자세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해냈다. 그의 손과 손 사이에서 주전자와 같은 옥색의 잔이 반짝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홀짝이는 소리도 없이 옅은 색을 가진, 펜드럴 입장에서는 아직 신비하기만 한 그 음료를 마셨다. 펜드럴은 로키가 잔을 조용히 내려놓는 자세를 보다가 그만 자신의 옷에 뜨거운 차를 조금 흘리고 말았다. 선생이 모범을 보이자마자 당당하게 찻잔을 잡고 들이부은 토르가 입맛을 다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한 잔 더 주오, 스승님!”
스승은 또 한 번 통쾌한 제자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뜨겁지 않으십니까? 조금 뜨겁지만 먹을 만 하오! 짧고 통쾌한 문답 후에, 스승은 조용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제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로키 왕자님은 제게 아직 질문을 던지지 않으셨지요?”
“아……. 하지만 음료를 마시는 것에 무슨 질문이 더 있겠습니까.”
로키는 스승을 존대했다. 어째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펜드럴마저 이해할 수 없었다. 존경과 지위는 다른 문제이다. 애당초 그들의 스승은 그러한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왕궁이기에 관습을 지키는 것뿐이다. 토르가 어느 날 존대를 하더라도, 펜드럴이 갑자기 하대를 하더라도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펜드럴은 로키가 낯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오늘은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요.”
휴식이라는 말에 토르의 눈이 커졌다.
“로키! 나를 가엾이 여겨라! 펜드럴도!”
가만히 앉아있는 수업보다는 몸을 쓰는 게 토르의 취향이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이미 숲이 펼쳐져 있을 거라고 펜드럴은 확신했다. 그는 친구의 그런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편이었다. 호쾌함과 솔직함은 가장 좋은 미덕이요,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영광이었다.
“……그렇다면, 관계없는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관계가 아예 없는 질문은 없답니다.”
선생의 대답에 로키는 눈을 조금 찌푸리며 웃었다. 펜드럴은 그가 불쾌하게 느꼈을 거라고 추측했다. 로키는 누구든, 설령 존경심을 갖고 있는 상대라고 해도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펜드럴의 눈에는 그랬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로키는 같이 놀기에 너무 어리다고 말했던 시프의 머리칼을 잘라버렸을 리가.
“방금 스승님께서는 차와 함께 호흡을 하신다 하셨지요.”
“예, 그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를 다 마시면 호흡이 멈추는 것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체는 살아있는 한 계속 숨을 쉬지 않습니까. 차와 함께하는 호흡은 멈추었으나, 왕자님의 삶의 호흡은 계속됩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을 다도라 하지만, 이 다도가 끝나도 우리에겐 숨이 남아있지요.”
“그렇다면 스승님, 이 끝에 숨이 있다면, 숨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펜드럴은 매끄럽게 마감된 옥색 찻잔을 기억한다. 깨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잔이었다. 하지만 숱하게 물건을 부수고 논 그는 그 찻잔이 어떻게 부서질지 알고 있었다.
질문을 하는 로키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펜드럴은 그때의 답을 여전히 모른다. 스승님은 잠시 멈추었다가 웃으면서 토르와 펜드럴을 보냈다. 이 답변은 길어질 것 같고, 그러면 질문의 대가로 약속한 휴식시간을 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숲으로 놀러 가자며 자신의 팔을 당기는 토르를 따라가며 펜드럴은 불편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로키는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있었고 스승은 뭐라고 나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는 입술을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펜드럴은 로키가 처음으로 배운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갈 때, 왕비님과 어머니의 담소가 길어진 탓에 숲에서 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어머니를 기다렸다. 물론 종종 왕비님의 배려로 얻어먹은 과자들이 아주 맛있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노을이 뉘엿뉘엿 질 때쯤에야 어머니와 프리가 왕비님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펜드럴은 몸을 탁탁 털고 나무 위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스승님이 왕비님을 향해 달려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왕비님, 로키 왕자님께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자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프리가는 다소 무례한 선생의 발언에도 우아하게 웃었다. 물론 그 속뜻이 ‘네가 뭔데 여태껏 잘만 지내다가 갑자기, 감히 내 아들에 대해 뭐라고 하느냐.’라는 것은 그녀의 오랜 친구만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펜드럴에게 프리가는 우아하게 화낼 줄 아는 사람이니 예의를 갖추라고 엄청나게 잔소리하곤 했다.
“제가 말씀을 잘못 올렸군요. 차분히 설명드리지요. 오늘은 다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왕자님들에게 다른 문명을 알려주고자 하여…….”
“아, 그 녹차 말이지요? 확실히 아이들이 좋아할 맛은 아니지요. 학자님이 녹차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녹차가 맛있다는 것은 제가 아니까요.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로키도 좋아할 거랍니다. 허브차는 벌써 꽤 좋아하던 걸요. 프리가는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내 아들에게는 문제 같은 것 없다고 단정 짓는 말투에 학자는 가슴을 치고 싶었다.
“아니, 그 말이 아닙니다! 저는 차는 그 상황과 호흡하며 마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왕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아십니까? 둘째 왕자님이 제가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자, 차의 마지막에는 호흡도 끝나는 것이냐 물으셨습니다.”
“어머, 벌써 논리학에 흥미를 보이는군요.”
프리가는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단 꽃을 화병에서 빼내 들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무어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차와 함께하는 숨이 끝나도 삶과 같이하는 숨이 남아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 왕자님께서 쓰게 웃으시더군요. 저는 그 표정이 잊히질 않습니다. 그런 표정을 꼬맹이가 짓다니…….”
“말을 조심하시오.”
여태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의 말이었다.
“……왕족이어도 아이는 아이지요. 아이는 순진무구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게 제일입니다! 그런데 둘째 왕자님은, 그 대답에 다시,”
학자는 거의 숨을 껄떡이고 있었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 숨의 끝에는 무엇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학자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렸고, 프리가는 손에 들고 있던 꽃을 그대로 화병에 다시 꽂았다. 어머니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펜드럴을 궁전 안으로 돌려보냈다. 스승은 그제야 펜드럴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당황했다. 아이한테 보여줄 모양새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펜드럴은 어머니의 말대로 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왕비님이 학자를 다독이고, 젊은 학자가 그 애가 어쩌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왕비는 로키도 슬슬 조금 더 배울 때라고 말했다. 그녀는 노을이 지는 동안 시종들이 테이블을 부지런히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노을이 다 지고 테이블이 말끔해졌을 때, 그녀의 친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로키에게 마법을 가르쳐야겠어.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좋을 것 같아.”
로키의 첫 마법은 펜드럴과 토르도 함께였다. 무려 아스가르드 왕비님의 첫 수업이었다! 왕비님의 마법이었다! 당연히 펜드럴은 신났다.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다고 했으나, 왕비님이 웃으면서 한 번에 너무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무리라고 말하셨다. 펜드럴은 자신의 어머니가 왕비님과 친구라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마법의 대가라고 불리는 왕비님의 마법은 굉장했다. 적당한 크기의 방이 설산이 되었다가, 용암이 흐르는 땅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노란 꽃이 피는 평야로 변했다.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도 났다. 그것이 압도적인 풍경 때문에 느끼는 자신의 착각인지 실제인지는 몰랐으나, 자신과 토르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아무리 뛰어다녀도 벽에 부딪히는 법이 없었다.
곧 왕비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그리로 뛰어가자, 마법이 거두어지고 원래의 방이 보였다. 뛰어다니는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방이었다. 토르와 펜드럴은 서로 쳐다보면서 감탄사를 내질렀다.
왕비님은 세 아이에게 차분히 원리를 가르쳐주었다.
“마법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거란다. 세상의 시작은 호흡이지. 숨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자꾸나.”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모든 주술과 마법의 입문에서 배워야 하는 단계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보는 거야.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니란다. 다정한 프리가의 말은 포근하지만 냉철했다.
“복잡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끔찍한 것도 다 너의 안에서 나오는 거란다.”
프리가는 모든 것의 어머니였고 오딘은 모든 것의 아버지였으나, 그럼에도 프리가는 로키의 어머니였다.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어린 로키의 손을 이끌어 세웠다.
“자, 저번에 본 눈밭을 생각해보렴. 하얗고, 아름답고, 고요한 들판을. 눈을 감고 숨을 쉬어. 네 속으로 들어가는 공기는, 그 눈밭의 숨이 되어서 나오는 거야.”
검사가 된 펜드럴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도 마법을 배우기는 했었다. 사실 그 수업 시간에 프리가의 말을 이해한 학생은 로키뿐이었다. 프리가가 눈밭을 고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쉬워서였다. 순백은 현실보다 상상에서 더 쉬웠다. 눈을 꼭 감은 로키가 숨을 내쉬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펜드럴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곧 토르가 소리를 질렀다. 눈이야! 대단해, 로키! 그제야 쳐다본 천장에서는 조금씩 눈이 날리고 있었다. 곧 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보였다. 온도가 내려갔다고 생각했다. 펜드럴과 토르는 자신의 발목까지 온 눈에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로키의 마법은 달리다 보면 벽에 부딪혔다. 프리가의 마법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감만은 지지 않았다고 펜드럴은 생각했다. 누가 알았을까? 그 현실감은 마법이 아니었음을. 누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자, 이제 앞을 보렴. 마법에 재능이 있구나, 로키. 무슨 뜻인지 알겠니?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네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너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꺼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꺼낼 수 있을 거란다.”
세상의 어머니께서 그리 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 너머를 알 수 있었을까?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로키가 그 말의 이면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 어째서 로키의 탓일까? 로키는 프리가의 칭찬에 말갛게 웃었다. 녹색 눈은 곡선을 그렸다. 조금 떨어진 방의 온도 탓에 볼이 붉어졌다고 믿었다. 로키는 즐겁게 웃었다. 마법의 감각은 기분 좋았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토르와 펜드럴이 웃고 있었다.
로키는 전혀 몰랐다. 자신의 첫 번째 마법이 그토록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로키가 어머니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을. 고작해야 환영 마법 속에서는 눈밭의 숨처럼 차가운 숨을 내쉴 수 없음을. 거짓된 환영의 눈을 부여잡으려고 애쓰던 그를 프리가가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 모든 것을 몰랐음을. 하지만 어떻게 무지가 아이의 잘못일까?
아름다운 세상을 온통 담을 수 있다는 말은, 세상의 끔찍함을 온통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음을 어렸던 그는 몰랐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형님의 황금빛 머리카락도, 그의 금빛 투구에 모두가 보내는 환호도.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단순했다.
프리가는 그 날 수업을 가장 잘 들었던 상이라며 로키에게 검을 주었다. 검은 가죽으로 손잡이 부분을 감싼 단도였다. 얼핏 보면 단출해 보일 수 있으나, 사용된 가죽은 사납기로 유명한 맹수의 가죽이었다. 단도는 아이가 들기에도 가벼웠고, 몸이 재빠른 로키에게 잘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토르는 웃으며 네게 딱 맞는 선물이라고 했고, 로키는 조금 눈썹을 비틀었지만 곧 형에게 주기에는 너무 세련된 물건이라며 대꾸했다. 토르는 거기에 껄껄 웃었다. 펜드럴도 웃었다. 손잡이 끝에 장식처럼 보석이 박힌 검의 날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그 검은 언제나 반짝거렸다. 로키가 프리가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펜드럴이 오래된 고목을 보며 자신보다 어린 로키를 떠올렸을 때도. 언제나 로키의 허리춤에 달려서, 붉은 보석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로키가 토르의 사냥을 따라갔던 수없이 많은 날에도, 단도는 분명히 반짝거렸다. 단도이니만큼 광채가 번쩍였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아한 로키의 몸짓을 따라서 반짝임이 이어졌다. 얇고 선명한 빛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펜드럴은 이미 그 선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단도는 주로 그만큼이나 우아하게 마감된 칼집에 들어가 있었다. 사냥을 할 때 로키는 주로 마법을 통해 토르와 그 친구들을 도왔으며, 직접 칼을 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펜드럴이 칼을 휘두르다가 그를 보면 그는 얄팍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까딱했다. 혹은 턱으로 펜드럴의 뒤를 가리키기도 했다. 뭔가 싶어서 뒤 돌아보면 어느 새인가 꽤 커다란 짐승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로키는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곳에서 모두를 지켜보았다. 꼭 필요한 자들에게 마법으로 도움을 주었고, 너무 쉬워 보일 때에는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런 로키가 단도를 들 때는 몇 번 없었다. 사실 사냥을 간 횟수가 횟수이다 보니 몇 번은 아니었고, 몇 백 번은 되었다. 처음으로 그가 단도를 들었을 때는 이미 세 마리를 힘으로 붙잡고 있는 토르에게 또 한 마리의 맹수가 달려들 때였다. 그는 용감하게 체중을 실어 맹수를 넘어뜨렸고, 마법으로 맹수의 눈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방향을 잃어버린 맹수가, 냄새를 맡고 바로 앞에 있는 로키에게 달려들었을 때 칼집째로 머리를 후려쳤다. 쓰러진 맹수가 일어나려고 하자 단도로 어깨뼈를 찔렀다. 어깨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맹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로키는 바들거리는 맹수를 향해 단도를 높이 들었다. 숲 속의 햇빛은 강했다. 길지 않은 칼날에 태양광이 강하게 반사되었다. 로키는 프리가 가 준 단도로 짐승의 숨통을 끊었다.
두 번째로 그가 단도를 들었을 때도 사냥터였다. 바나헤임의 숲 속에서 그들은 야영을 했다. 펜드럴은 나뭇가지를 주워온다던 토르가 나무를 베어오지는 않을지 문득 걱정이 되어 그를 찾았다. 언제나 땔감을 찾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고, 토르라면 맨손으로도 나무를 베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의 이유였다. 묠니르는 도끼가 아니라 망치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꺾어 오는 거겠지만. 하지만 땔감은 수분이 없어야 하고 통나무를 땔감으로 쓰려면 먼저 바싹 말려야 한다. 그리고 방금 벤 나무는 당연히 안에 수분이 많다. 그러니 얌전히 마른 나뭇가지만 조금 주워오는 게 제일이었다. 그걸 토르가 모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보내놓고 나니 마음에 걸렸다.
숲이 넓어서 그런지 한 바퀴를 도는 데도 오래 걸렸다. 계속해서 토르 이름을 부르다가도 어느새 목이 아파 그만뒀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정 못 찾으면 다시 야영 장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미 다시 왔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시프가 그녀의 부엉이를 날려주기로 했으니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누가 아나. 시프가 까먹었을지도 모르지.
그는 정처 없이 걷다가 곧 절벽을 마주했다. 한숨을 쉬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발 밑이 조금 이상했다. 동물의 발자국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언뜻언뜻 그 발자국들 사이로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많이 흐려져서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곡선이 드문드문 이어졌고, 그 간격이 꼭 사람의 보폭처럼…….
펜드럴은 그게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절벽 끝으로 달려가 아래를 보았다. 하이에나보다 조금 더 큰 맹수들 수십 마리가 죽어 쓰러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 로키가 토르의 옆에 있었다. 토르의 금빛 머리카락은 동물의 피와 그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로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절벽 위에서 보아도 그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절벽 바로 아래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피가 조금 묻어있는 걸로 보아 토르가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괜찮았다. 아스가르드의 축복받은 육체는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물론 그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 그를 옮겨서 치료만 받게 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피가 아주 많이 난 것도 아니었다. 펜드럴은 로키를 부르려고 했다. 그리고 로키의 손에 있는 단도를 보았다.
칼 끝이 부들거렸다. 늘 흔들림이 없이 우아한 선을 따라 움직이던 단도는 초라하게 흔들렸다.
로키는 다른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곧 그는 칼을 버리고는 일어섰다. 펜드럴은 그때 그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거리도 멀었거니와, 아래를 향하고 있는 로키의 표정도 볼 수 없었음에도 그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로키의 축 처진 등을 보았다. 힘없이 흔들리는 어깨를 보았다. 얼굴을 쥐어뜯는 팔을 보았다. 로키는 비척거리며 걸어가더니, 죽은 맹수의 송곳니를 뽑았다. 다시 토르에게 다가가는 걸음은 휘청거렸지만, 빨랐다.
그는 두 손으로 송곳니를 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내리찍었다.
펜드럴은 처음으로 로키의 표정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노을빛이 절벽 위에 자신에게 긴 그림자를 선물했다. 토르의 위로도 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송곳니는 갑옷을 뚫었으나, 그것뿐이었다. 상처는 얕았고, 피는 아주 조금 흘렀다. 그것보다는 머리의 상처가 더 컸다. 로키는 눈물이 마른 자국을 닦지도 않은 채로 위를 올려보았고 펜드럴을 발견했다. 펜드럴은 로키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펜드럴은 자신이 로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그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기억할 수 없었다. 펜드럴이 기억하는 건 오직 로키의 모습뿐이었다. 그의 녹색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밑으로는 눈물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흙과 피가 로키의 목 아래에 점점이 튀어있었다.
로키는 분명 펜드럴을 보았다. 정확히 시선이 맞았다. 노을 탓에 숲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로키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녹색 홍채에 붉은색이 섞였다. 그리고 펜드럴은 다시 눈물이 맺히는 눈과, 비틀리는 웃음을 동시에 보았다.
펜드럴은 그 순간에 멎었던 숨을 기억했다.
펜드럴은 그 길로 야영지로 뛰어갔다. 어린 시절의 숲이 생각났다. 왕궁 옆에서 뛰어가면서 보았던 녹색이 생각났다. 노을의 붉은빛이 자신을 뒤쫓아오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숲 속은 온통 노을빛이었다. 숨이 찼다. 거친 호흡을 고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펜드럴은 눈가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옆의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녹색 눈이 생각났다. 까만 머리카락은 피에 얼룩져있지 않았고 단정히 넘어가 있었다. 펜드럴은 얼굴을 쥐어뜯었다. 어린 로키의 손에는 짐승의 이빨 대신 찻잔이 들려 있었다. 차는 연한 녹색이었다.
펜드럴은 눈을 떴다. 어린 로키가 맞은 편 소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웃었다. 나무의 갈색 껍질에 붉은 노을빛이 섞였다. 강한 햇빛이 땅을 내리찍었다. 어린 로키의 머리카락은 단정했고, 그는 항상 가지 않았던 숲에 앉아있었다. 연한 녹색의 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하늘조차 붉었다.
“그래서 알아냈어?”
어린 로키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찻잔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찻잔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목이 아픈 사람처럼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내가 이 끝을 왜 물었는지.”
로키가 눈을 떴다. 붉은색이었다. 그조차도 노을 탓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을보다도 붉은색이었다. 로키의 단도 끝에 있는 보석처럼 짙은 붉음이었다. 펜드럴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펜드럴을 일으켜 세운 건 뒤에 토르를 업고 있는 로키였다. 눈물자국은 많이 닦아냈지만 아주 사라지진 않았다.
“여기서 뭐해? 설마 아직도 안 알렸어?”
펜드럴은 로키의 녹색 눈을 보았다. 로키 너머에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토르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지만, 대충이나마 치료가 되어 있었다. 로키는 무겁다며 펜드럴에게 토르를 넘겼다. 둘은 묵묵히 야영지를 향해 걸었다.
“너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로키, 나는,”
“왜,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말할 거야?”
로키가 웃으면서 펜드럴을 보았다.
“그러고 싶으면 그래, 펜드럴.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막겠어.”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바나헤임의 세 위성 중 가장 큰 것이 뜨는 날이었다. 그 위성의 이름은 비다르였다. 비다르는 보름달처럼 훤하게 숲 속을 밝혔다.
“하지만 오늘 밤은 하늘에 비다르만 있고 1, 오딘의 까마귀조차 이곳을 들르지 않았으니.”
펜드럴은 로키의 미소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로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의 옷에는 피가 까맣게 말라붙어있었다. 둘은 여전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만 말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 거야.”
펜드럴은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침묵의 길이었다. 침묵의 달이 떠오른 날에 걸맞은 길이었다. 결국 펜드럴은 그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토르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토르는 무언가 안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펜드럴은 토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펜드럴은 토르에게마저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다. 그는 몇 번이고 말하고자 했다.
그때마다 멀리서 로키가 보였다. 때로는 정말로 퇴원을 축하하는 술을 들고 온 로키이기도 했고, 때로는 여전히 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로키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로키는 실제이든 환상이든 여전히 우아했다. 때로는 그가 자신에게 환술을 쳐둔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궁중 마법사에게 가서 자신에게 저주나 마법이 내려진 것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몇 명에게는 장난처럼, 몇 명에게는 진지하게 물어보았으나, 어느 쪽이든 걸려있는 주술이 없다고 했다.
그건 확실해졌다. 로키가 바이프로스트 너머로 떨어지고 나서도, 펜드럴의 눈에는 여전히 로키가 보였기 때문이다.
펜드럴은 이제 자기 전에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는 어린 로키를 보아도 놀라지 않았다. 어린 로키는 붉은 눈만 가진 것이 아니라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로키가 서리 거인이라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진 이후였다. 푸른 피부는 달빛을 받으면 창백해 보였다. 그는 붉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면서 펜드럴을 바라보았다.
“차가 마시고 싶어.”
펜드럴은 존재하지도 않는 찻잔에 녹차를 부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차는 녹차가 아니었다. 옅은 녹색의 액체가 테이블 아래로 줄줄 흘렀다.
“정말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을 줄 몰랐어. 비다르에게 맹세라도 한 거야?”
“너는 그 이후로도 토르를 많이 찔렀잖아.”
“그래서 최초의 하나는 안 알려져도 된다?”
“그건 생명에 거의 영향도 없었어.”
“있지. 너도 알겠지만, 그건 유일하게 내가 울면서 토르를 찔렀던 순간이었어. 정말 죽일 생각이었거든. 나머지는, 너도 알겠지만, 토르가 건강할 때 한 건 장난이었잖아.”
“그게 어떻게 장난이야……. 그때 네가 정말 죽이고 싶어 했다는 건 알아.”
어린 로키는 어느새 조금 자라 있었다. 붉은 눈은 점점 녹색으로 변해갔다. 하얀 손이 펜드럴의 손을 잡았다.
“너는 항상 죽이고 싶었잖아.”
“맞아.”
“왜 그랬던 거야?”
“내가 왜 말해줘야 해?”
펜드럴은 이제 자신의 손과 거의 크기가 같은 손을 맞잡고 싶었다. 로키의 눈 끝은 말라있었다. 어차피 환상이니까 손을 잡지 못할 것을 알았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어.”
검은 머리를 넘기며 그가 웃었다. 잘 정돈되어 있었다.
“대체 왜?”
창 밖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서서히 넘어왔다. 노란빛이 얼굴 윤곽을 부드럽게 드러냈다. 펜드럴은 로키의 볼 위에 내려앉은 빛을 엄지로 쓸었다. 로키는 늘 우아했으므로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네 감정의 모양을 알고 싶어.”
얼굴을 만져도 변화가 없던 로키가 조금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펜드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스가르드에는 달이 없었다. 로키를 비추는 빛은 도시의 조명에서 온 것이었다.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펜드럴은 그 날의 숲길을 떠올렸다. 그는 비다르에게 맹세했다. 그 날은 침묵의 밤이었다. 그러니까,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펜드럴은 입술을 움직였다. 토르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고 로키는 몇 걸음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펜드럴은 그를 바라보다가 로키의 이름을 불렀다. 수도 없이 많이 불렀던 이름이었다.
로키는 토르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토르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더 뚫고 지나갈 수 있었던 송곳니는 갑주만 겨우 뚫고 멈추었다. 로키는 송곳니를 더 세게 찌르지 못했다. 펜드럴은 로키의 감정을 어렴풋이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키가 하늘을 올려다봤고, 펜드럴과 시선이 마주쳤다.
비웃는 표정은 펜드럴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조차도 펜드럴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토르도 아니었다. 로키 자신도 아니었다. 굳이 추측해보자면 세 사람 전부였다. 그들 각자는 아니었으나. 펜드럴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었고, 펜드럴은 그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펜드럴은 로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펜드럴은 그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떨리는 어깨가 비참했고 눈물 자국조차 우아해서, 비틀리는 입가의 웃음은 참아낼 수가 없어서. 펜드럴은 달렸다.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그는 이미 순순히 인정한 후였다. 그는 로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혼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자라면 모를까, 변덕적인 감정의 진짜 형태는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달리면서 어린 시절 되돌아보았던 로키의 표정이 떠올랐다. 펜드럴은 숨을 삼키며 달렸다. 호흡이 고르지 못하자 더욱 빠르게 숨이 찼다.
비다르가 은은하게 빛을 뿌렸다. 흙은 으깨질수록 부드러워졌다. 바람과 빗물에 수없이 닳을수록 고운 흙이 되었다. 은은한 빛을 받아낸 흙을 밟으면서, 펜드럴은 로키의 이름을 불렀다. 침묵의 밤이었다. 처음으로 달렸던 숲에서 느낀 감정부터, 지금 그의 눈가에 생긴 눈물 자국까지,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로키를 보았던 순간의 감정까지, 한 마디면 되었다. 짧은 고백을 하기에 알맞은 밤이었다.
그 밤은 침묵의 밤이었다. 로키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북유럽신화에서 침묵을 상징하는 신. 라그나로크에서 펜리르를 죽임. [본문으로]